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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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과 경기도는 코로나19에 대응해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를 시행했다.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에 비하면 부족한 대처였을 수도 있고, 하루하루의 벌이가 달린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조치였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누구에게나 이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일상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경험이 됐을 테다. 매일 들리던 카페에 갈 수도 없었고, 야근을 마치고 식당에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불과 며칠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동인녀 츠즈이씨 1>과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한국어판 표지 / 길찾기, 북폴리오

<동인녀 츠즈이씨 1>과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한국어판 표지 / 길찾기, 북폴리오

무엇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잘 닦여진 인프라 덕분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스마트폰으로 주문해 다음 날 받을 수 있었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거나 업무를 보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것이 이전과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다. 네트워크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고 하지만, 막상 닥쳐보니 다른 차원의 갈증이 있었다.

뜻밖의 만화 두 편이 있다. 하나는 <동인녀 츠즈이씨>라는 오타쿠의 일상을 다룬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75세의 노인과 서점직원이 주인공인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이하 툇마루)이다. 두 작품을 다 알고 있는 독자라면 곧바로 공통점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BL(Boys Love)’이라는 범상치 않은 소재 때문. 남성 간의 성애를 그리고 있는 BL이라는 장르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비디오게임 등을 통해 알려졌고, 온라인을 통한 커뮤니티와 플랫폼의 발전으로 지금은 국내 웹소설과 웹툰의 주요한 카테고리로 성장했다.

두 작품은 BL이 아니지만, 해당 장르에 빠져 있거나 빠지기 시작한 인물들의 이야기다. <동인녀 츠즈이씨>의 츠즈이와 M은 친구의 중계로 서로를 알게 되어 관심사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탐구를 한다. 그들은 좋아하는 작품을 실제와 가상의 사이에서 즐기며, 작품 속 주인공에게 줄 선물을 만들거나 생일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들의 취향은 실생활에도 영향을 주어서 남성을 만날 때마다 BL 장르의 문법에 대입해 남몰래 오해하거나 즐거워한다. 한편 <툇마루>는 75세의 이치노이 유키 할머니가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산 BL 만화책에 재미를 느끼면서 같은 작품을 몰래 즐기던 고등학생 서점직원과 나이를 초월해 친구가 되는 모습을 그렸다.

<동인녀 츠즈이씨>와 <툇마루>의 인물들은 자신의 취향이 탄로 날까 두려워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공개적으로 밝히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실제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합당한 걱정이다. 그들과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볼 기회가 더욱 많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간절했고, 서로의 취향을 열심히 응원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들처럼 우리도 단순히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선택과 취향을 인정받기를 원한다. 내가 재미있게 본 작품을 남들도 좋아하는지 궁금해 댓글을 읽고, 여론과 다른 평가하기를 껄끄러워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동의할 수 있는 타자를 찾는다. 그중에 선택된 몇을 친구라 부르고 때론 의견이 다르겠지만 서로를 존중하기로 한다. 코로나19 이후 얻은 것 하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겨우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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