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짜뉴스는 환자의 절박함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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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보통 앙상한 환자의 몰골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상상을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해내는 게 항암치료다. 아내는 항암을 세 번 하면서 11kg이 빠졌다. 너무 말라가는 몸, 어둡고 퀭해진 눈,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쇠약해진 모습을 보면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조건 먹여야 한다’는 생각만 든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그나마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때로는 먹지 못해 영양제를 종일 맞으며 버틸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식사 시간은 이때부터 전쟁 같다. 멸균식으로 나온 식사는 맛이 없다. 병원 밥은 원래 맛이 없지만 모든 걸 끓이고 볶으며 열을 가해 나오는 멸균식은 더 맛이 없다. 외부 음식도 마찬가지. 통조림 등 ‘멸균제품’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 중에서 골라야 한다. 매번 먹으라고 힘주어 말해도 지칠 대로 지쳐 못 먹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오늘부터 초콜릿 안 먹을래.” 어느 날 아내가 초콜릿과 절교를 선언했다. 그나마 낱개로 포장된 초콜릿은 먹을 만해서 친하게 지냈는데 갑자기 안 먹겠다고 했다. 끊겠다는 건 초콜릿뿐만이 아니었다. 단것 자체를 안 먹겠다고 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옆 침대 환자들끼리 나눈 대화를 들었는데 그러더란다. “암세포가 단 걸 좋아한대.” 가뜩이나 항암치료 결과가 좋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때였으니 아내의 가슴에 그 말이 콕 박인 듯했다. 하나하나 먹을 걸 고를 때도 여기서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했을 때 분명히 간호사에게 “괜찮다”는 답을 들었는데 절대 안 먹겠단다. 그나마 잘 먹을 수 있던 선택지가 하나 줄었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 됐다.

괜찮다는데 초콜릿을 안 먹겠다?

검색을 해보니 암환자들 사이에서는 ‘설탕이 암을 유발한다’라는 게 마치 도시전설처럼 퍼져 있는 얘기였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한 메이저 병원에서는 아예 유튜브에 이 주제로 동영상도 만들었다. 병원의 결론은 이랬다. “설탕과 암은 연관성이 없으며 적정량을 섭취하는 건 문제가 없으니 먹어도 된다.”

간호사에게 초콜릿 문제를 물어보니 “금시초문인데요?”라고 한다. 주치의에게도 살짝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제가 읽은 논문 중에는 그런 얘기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으니 드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라고 한다.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항암에 성공하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 뒤 퇴원할 때까지 단 걸 먹지 않는 고집을 발휘했다. 그리고선 집에 와서야 안도했는지 초콜릿을 손에 집어 들었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보호자도 상담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상담사는 내게 “너무 스스로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보호자들 대부분이 자책을 많이 한단다. 나 역시 그랬다. 아내가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부터 나 스스로 끊임없이 되물었던 게 있다. ‘왜 이런 병이 우리에게 왔을까’,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줬나’, ‘내가 괜히 이직하라고 해서 힘들었나’, ‘지금 집에 이사 오며 했던 페인트칠 때문일까’, ‘혹시 내가 골랐던 침대에서 라돈이 나오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며 스스로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굳게 결심했다. 내가 반드시 낫게 만들겠다고.

가짜뉴스는 이런 감정의 약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온다. 병실에는 뜬소문도 많고, 검증되지 않은 얘기들이 돌고 돈다. 암환자를 둔 보호자에게 강조되는 덕목(?) 중 하나가 “이 병에 관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건데 포털이나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병실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정보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진짜 정보를 가려내지 못하는 정보 과잉의 부작용에 빠지기 쉽다. 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뜨거운 이슈가 됐을 때 뉴스를 보던 사람들은 그랬을 거다. “저걸 진짜 먹는다고?”

주치의 괴롭힐 수 없으니 우리끼리라도

밤에 텅 빈 병원 1층 로비의 널찍한 공간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형제로 보이는 두 남자가 대화 중이었는데 형이 환자였고 동생이 보호자였다. 동생이 형을 위해 펜벤다졸을 구했는데 먹을 만한지 자기가 먼저 테스트해봤다고 했다. 먹고 난 뒤 구토를 하며 난리가 났다면서 형보고 먹지 말자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동생의 셀프 임상이 비단 이 형제들만의 일이었을까. 규소가루가 항암에 효과가 있다면서 의사 몰래 물에 타서 환자에게 먹인 보호자 얘기도 들었고, 고기 같은 동물 단백질이 암을 재발시킬 수 있다면서 비건을 고집하는 사람도 봤다. 말이 안 될 것 같은 내용도 절박함을 자양분 삼아 퍼져나간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든 낫는 거다. 하지만 치유만 좇다가 심각한 오류를 얻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걸 단순히 환자나 보호자의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딘가에서 읽은 한 의사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첫 번째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세 번째는 전문가들을 괴롭혀라. 이것이 암을 치료할 때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세 번째가 문제다. 짧게는 1분, 길어야 3분 정도 보는 주치의를 환자나 보호자가 어떻게 괴롭힐 수 있을까.

내 가족이 항암 중에 저혈압이 와도, 오한을 반복하며 구토를 해도, 갑자기 일반 병동에서 중환자실로 이동해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는 보호자가 적지 않다. 소통의 부재로 부글부글 끓는 보호자의 경험담은 흔하디흔한 얘기다. 의사를 질문으로 괴롭히지 못하는 의료시스템이니 환자나 보호자들끼리 정보의 옥석을 가리며 맞다 아니다를 두고 고민한다.

나도 그랬다.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가 천일염을 한 숟갈씩 먹어 효과를 봤다는 경험담을 본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천일염을 찾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우리도 같은 효과를 볼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희망을 걸었다. “소금을 따로 먹는다고요? 음식에 간할 때 쓰는 건 괜찮아도 그렇게 숟가락으로 먹으면 안 돼요.” 혈액 속 나트륨이 부족하면 몰라도 암과 소금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주치의의 설명에 나는 천일염 구하기 프로젝트를 철회했다. 이처럼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조언이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오류는 사라질 수 있다.

<제이든 칼럼니스트·전 기자(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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