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고 아이에게 함부로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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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말을 시작한 뒤로 ‘엄마’라는 말을 하루에 수십 번씩 듣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 호명이 낯설다. 때때로 머릿속으로 되뇐다. ‘내가 엄마라니.’ 엄마가 된다는 게 너무 어렵다. 아이는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 양육자를 성가시게 하고, 때때로 화나게 하면서 자라난다. 물론 엄청난 기쁨도 준다. 문제는 그 두 가지 측면이 서로 상쇄돼서 0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해소되지 않은 피로가 누적되어 터질 때가 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잠을 못 자고 너무 힘들 때는 ‘내가 이러다 사회면에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부지기수다. 다행히 그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내 곁에 또 다른 양육자가 있고, 그가 애를 꽤 잘 돌보는 사람이어서라고 생각한다.

다온 작가의 <땅 보고 걷는 아이>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다온 작가의 <땅 보고 걷는 아이>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자식 키우기의 고단함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 관계에서 아이가 가지는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다. 올해도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보도됐다. ‘계부’·‘계모’와 같은 표현이 강조된 사건이었지만, 실제로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절대다수가 친부모다.(77%, 복지부 2018년 통계) ‘악마’ 같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 같지만, 실은 ‘평범한’ 부모들이 저지른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가족 같은 회사’라는 표현이 착취적인 노동환경을 뜻하는 말로 통용되듯, 부모 자식만 한 갑을관계도 없다. 직장이라면 차라리 때려치우기라도 할 수 있다. 이 무시무시한 관계에서 양육자의 위치가 된다는 건 까딱 잘못하면 힘을 휘두르는 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최근 수년간 아동학대는 증가 추세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2배로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거리 두기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집’이 안전지대일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필요하다. 아이의 관점에서 가정폭력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웹툰 <땅 보고 걷는 아이>를 함께 읽자고 권하고 싶은 이유다. 이 만화는 ‘한겨울’이라는 소녀가 ‘집’에서 겪는 학대와 그 영향에 대한 한겨울의 르포르타주라 할 수 있다.

겨울의 엄마는 집안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다. 남편의 사업실패와 바람, 폭력으로 친정으로 도망쳐 이혼한다. 양육비도 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겨울과 여름,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한다. 친정에서는 이런 상황을 환영하지 않고, 특히 친정아버지는 정서적인 학대를 가한다. 겨울의 엄마는 모든 스트레스를 겨울에게 푼다. 겨울은 성장하면서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흔히 폭력은 정서적인 것이라도 ‘상처’로 표현된다. 그것은 마치 외면에 새겨진 어떤 흔적처럼 상상되지만, 실은 한 사람을 옭아맨 ‘그물’과 같다. 폭력의 피해를 말하기는 단순하지 않다.

가정폭력의 잔혹한 점 중 하나는 가해자가 늘 나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겨울을 학대하는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그렇다, 이 모든 사람이 겨울을 학대한다. 가정폭력의 무서운 점은 공모자가 많다는 점이다.) 겨울에게 잘해줄 때가 있다. 겨울은 혼란스럽다. 내가 미안해야 하는가. 화를 내는 내가 이상한가. 그들은 밥을 주고, 옷을 사주고, 학비를 주고, 용돈을 준다. 그들은 그것이 가족으로서 자신들의 도리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겨울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삶을 무조건 의탁하는 것만큼 무서운 관계가 있을까. 이 취약성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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