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우회로를 거쳐 전달되는 역사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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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편찬한 <춘추>는 동양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현실 정치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이상주의자의 귀결점은 교육이고 저술이다. 자신의 믿음과 가치가 흙 속의 진주로 묻히고 티끌처럼 흩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춘추>야말로 공자의 ‘다 걸기’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경고하고 미래를 제시한다. 공동체를 어지럽히고 윤리를 뒤흔드는 난신적자의 무리는 역사의 법정에서 붓으로 영원히 징치되고 있다. 그러나 미언대의(微言大義)로 제시된 원문은 워낙 간결하고 함축적이기에 상세한 해설을 통하지 않고는 서릿발처럼 엄정하고 칼날처럼 번쩍이는 준열함을 맛보기 힘들다. <춘추좌전>은 좌구명의 렌즈를 통해 짧은 원문에 담긴 맥락과 배경 그리고 의미까지 인간과 세계를 폭넓고 심도 있게 보여준다.

좌구명 지음·김월회 옮김·풀빛

좌구명 지음·김월회 옮김·풀빛

흔히 춘추는 나이를 뜻하고 한 해를 일컫는 말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주나라가 도읍을 옮긴 때부터 진(晉)나라가 위·조·한 세 나라로 나뉘기까지 360여년을 지칭한다. 주나라 천자라는 상징적 구심점은 있으나 천자가 해야 할 일을 유력한 제후가 수행하는 이중 권력의 시대다. 왕이 왕 같지 않은 세상에서 제후들의 싸움은 필연적이다. 경제적으로도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고 변경의 농지가 새롭게 개척되면서 기존의 세력 판도가 재편성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모든 일이 빈번하게 생겨났다. 상하의 구별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예가 무너지는 것을 <춘추>는 ‘고요 속의 외침’으로 개탄한다.

하극상의 경우를 보자. 자주 도읍을 옮긴 제후를 대부가 화살로 쏘아죽인 사건을 “도적이 채나라의 제후 신을 살해했다”라고 기술한다. 왜 도적인가? 하극상이 분명하니 대부는 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마땅하다. 왜 살해로 썼는가? 제후다운 제후가 아니니까 시해보다는 살해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진나라 문공이 패자로서 천토의 회맹을 주관하면서 천자를 불렀다. 제후가 왕을 소환하는 것은 강상의 도리를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해서 <춘추>는 “천왕이 하양에서 사냥을 했다”는 완곡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얼핏 물에 물 탄 듯하지만, 단어의 선택과 숨은 표현에서 서슬 푸른 비판 정신이 감지된다.

직접화법 대신 간접화법으로 말하는 <춘추>의 서술 방식은 현실 권력을 의식한 절충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사관의 기록은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이니 성명을 보전하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욕망을 제멋대로 추구할 수 없는, 그래서 사회를 만든 정치적 동물이다. ‘나다운 나’로 살고 싶다는 자기실현의 욕구도 집단과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상호 배려를 주고받으면서 표출되는 것이다.

여기서 직설적인 ‘돌직구’는 상대방의 감정을 즉각 건드리지만 ‘아리랑볼’은 여유를 갖고 생각하게 만든다. 애초 공자가 의도했던 것은 패배자의 정신 승리가 아니다. 다시는 이 같은 패덕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른바 승리자, 권력자를 계도하는 것이다. <춘추>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다양한 의미를 층층이 간직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독자는 좌구명과 같은 안내자가 그것을 끄집어낼 때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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