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 스타펀드에 유입된 ‘블랙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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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KEB하나은행’은 ‘KEB’를 떼어내고 ‘하나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지 5년 만이다. KEB는 외환은행의 영문명(Korea Exchange Bank)이다. 이로써 ‘외환은행’이라는 사명은 설립 53년 만에 국내 금융계에서 퇴장했다.

영화 <블랙머니>는 ‘론스타 게이트’ 사건을 모티브로 금융 사건을 추적하는 검찰 내부의 갈등을 그린 범죄물이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블랙머니>는 ‘론스타 게이트’ 사건을 모티브로 금융 사건을 추적하는 검찰 내부의 갈등을 그린 범죄물이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외환은행이 하나은행에 인수되는 과정에는 미국 텍사스에 근거를 둔 사모펀드 ‘론스타’를 빼고 말하기 힘들다.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2012년 이를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4조6000억원이 넘는 매각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정부가 2007년 당시 매각을 방해하지 않았다면 5조원대 수익을 더 거둘 수 있었다면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걸었고,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팩션 영화가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다.

한 여성 피의자가 자살했다. 검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겼다. 담당 검사였던 양민혁은 당혹스럽다. 자신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내막을 파헤친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살한 피의자는 대한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의 주요 증인이다. 외국계 사모펀드인 스타펀드는 자산가치 70조원의 대한은행을 1조7000억원에 사들였다. 근거는 금융당국에 제출된 의문의 팩스 5장. 팩스에는 은행의 부실을 부풀린 의혹이 있다. 알고 보니 사모펀드에는 한국인 돈도 많이 투자됐다. 양민혁 검사는 모피아, 청와대, 검찰, 초대형 로펌, 미국 정계까지 얽혀 있는 거대한 커넥션을 마주한다. 영화 속 스타펀드는 론스타, 대한은행은 외환은행이다. CK로펌은 김&장이 연상된다. 물론 영화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든다.

영화 제목이 된 ‘블랙머니’란 불법적으로 획득했거나 수익만큼 세금을 내지 않은 돈을 말한다.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금융당국이 알기 어렵다. 자금횡령, 기업비자금, 마약밀매, 무기거래 등 비정상적인 데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블랙머니에는 자금세탁이 뒤따른다. 자금세탁 수요가 불어날수록 암시장도 커진다. 암시장이란 천재지변, 전쟁 등으로 물자가 크게 부족해질 때 정부 통제를 벗어나 높은 가격으로 공공연히 거래되는 시장을 뜻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불법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 전체를 가리킨다. 블랙머니가 많을수록 암달러상도 바빠진다. 블랙머니는 결과적으로 지하경제를 키운다.

블랙머니는 불법적인 자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금을 내지 않고 획득한 모든 돈이 블랙머니다. 예를 들어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은 채 이뤄진 현금거래는 블랙머니다.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채 받은 과외비 20만원도 블랙머니다. 세원 파악이 안 돼 거래에 따른 세금을 걷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회계처리를 했다면 이것도 블랙머니다.

영화 속에는 한국인들이 차명으로 조세회피처를 통해 스타펀드에 거액을 투자한다. 글로벌 사모펀드의 투자자 명단을 한국 정부가 파악하기 힘들다는 허점을 이용했다. 결국 스타펀드에 유입된 자금의 상당액은 블랙머니였다.

블랙머니의 반대편에는 ‘화이트머니’가 있다. 제대로 세금을 내고 합법적인 절차로 취득한 돈이다. 블랙머니가 많을수록 국가경제에는 부담이 간다. 그만큼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적자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블랙머니를 줄이고 화이트머니를 늘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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