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주면 뭐해줄 거예요?”, “아휴, 해달라는 것 다해주죠.”
한 표가 아쉬운데 무슨 약속이든 못하랴. 유권자의 요구에 주상숙 의원은 이렇게 화답하며 두 손을 꽉 잡는다. 유치원도 확대해주고, 전봇대도 뽑아주겠단다. 엑스포를 유치해 지역경제도 살리겠단다. 넘쳐나는 지역구 공약, 모두 지킬 수 있을까. 장유정 감독의 <정직한 후보>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이란 발칙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거짓말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벌이는 소동인 <라이어 라이어>를 닮았다. 원작은 동명의 브라질 영화다.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는 대기업 보험사와 싸우다 국회에 입성한 주상숙(라미란 분). 그러나 3선을 지내면서 ‘거짓말의 달인’이 된다. 20평 좁은 집에 산다는 것은 거짓이었고, 장학재단을 세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도 거짓이다. 엑스포 유치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거짓, 서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도 거짓이다. 이를 지켜보는 할머니(나문희 분)는 안타깝다. 왜 저렇게 변했을까. 손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정치인은 어떻게 될까?
유세차 주부교실을 찾은 주상숙 의원은 주부 유권자들에게 강조한다. “망미동 은하수 육교 누가 지었습니까! 수미동 블랙홀 공원 누가 지었습니까!”
유권자를 대신해 지역의 요구를 중앙정부에 전달해 관철하는 것은 지역구 의원의 주요역할 중 하나다. 문제는 그것이 과도한 선심성 사업일 때다. 사업적 효과나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지역 사업을 밀어붙일 경우 ‘포크배럴(Pork barrel)’이 될 수 있다. 포크배럴이란 특정 지역구 혹은 정치자금 후원자를 위한 선심성·낭비성 사업을 일컫는 미국식 용어다. 포크배럴의 사전적 의미는 ‘돼지여물통’이다. 여물통에 먹이를 던져주면 돼지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정부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경쟁하는 의원들의 형태를 비꼬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포크배럴은 처음에는 선거 때 득표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행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었지만 미국 남북전쟁 이후 부정적 의미로 바뀌었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은 1873년부터 포크배럴이 현대적인 의미로 쓰였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대정부감시 시민단체인 CAGW는 포크배럴로 분류할 수 있는 재정지출을 규정하고 있다. 단 한 곳의 의원실에서 요청했거나, 경쟁적으로 수여되지 않고, 대통령이 요청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예산 요구나 전년도 지원액을 크게 초과한 경우다. 또 의회의 청문회 대상이 아닌 경우, 단지 지역적이거나 특별한 이익만을 제공할 경우가 ‘포크배럴’의 전형이라고 봤다.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망미동 은하수 육교, 수미동 블랙홀 공원 그리고 엑스포 유치까지 주상순 의원이 추진한 많은 사업이 태원생명과 연결돼 있다.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안 되는) 엑스포 유치를 왜 밀어붙인 것이냐”고 캐묻는 상대 후보에게 주 의원은 “태원에서 와이로(뇌물)를 너무 많이…”라고 실토해버린다. 포크배럴로 추진되는 사업에는 지역의 이권 혹은 개인의 이권이 걸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제대로 예산심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불합리성이 사전에 걸러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막판에 집어넣는 쪽지예산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포크배럴은 예산의 효율적인 분배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해악도 크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