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당하는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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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의정부지방검찰청은 ‘투표용지 취득 의혹’과 관련해 민경욱 전 의원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사는 조사 과정에서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을 제시하고 민 전 의원의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그런데 휴대전화 등 압수 대상물이 발견되지 않자, 검사는 당시 조사에 입회한 민 전 의원의 변호인 2명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하겠다고 고지했다. 압수수색에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필요하고, 여기 기재된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집행되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당시 검사가 제시한 영장엔 민 전 의원의 변호인들에 대해서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 변호인들의 신체를 압수수색하려면 원칙적으로 법원에서 별도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했다.

4·15총선 개표 조작 의혹을 주장해온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의정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4·15총선 개표 조작 의혹을 주장해온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5월 21일 경기도 의정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검사는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동행한 변호인들의 신체에 대해 영장 없이도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근거로 든 건 현행 형사소송법 제109조 제2항이다. 이 조항은 “피고인 아닌 자의 신체, 물건, 주거 기타 장소에 관하여는 압수할 물건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수색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행한 변호인의 신체는 피고인 아닌 자의 신체에 해당하고, 또 ‘압수할 물건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해당한다는 게 검사 발언의 취지였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변호인들은 “위법한 압수수색”이라며 신체수색을 거부했고, 변호사 단체에 민원을 제기했다.

해당 조항은 ‘압수할 물건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국민에 대한 무영장 압수수색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인 만큼 예외사유에 대한 엄격한 해석이 필요하다. 예컨대 변호인이 해당 자료를 불법적으로 은닉하고 있다거나 하는 사건 관련자의 진술이 나온 경우 등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인데, 당시 그에 상응하는 상황이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검찰의 이번 압수수색 시도가 ‘변호인들에 대한 강압적인 신체수색을 시도하면서 피의자의 방어권과 변호인의 변론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며 해당 검사의 징계를 요구했다. 변호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건 검찰의 이러한 주장이 단순한 ‘주장’을 넘어 ‘관행’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압수할 물건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라는 조문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변호인 자신이 피의자인 경우가 아니라도 언제든 의뢰인의 혐의 입증을 위해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압수수색의 예외가 아니게 된 이상, 우리나라에서도 비밀유지 ‘의무’와 구별되는 ‘비밀유지권’ 입법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변호사는 혐의사실에 관한 모든 정보 내지 증거자료를 의뢰인에게서 공유받아 수사 및 공판에 대응한다. 변호사만 압수수색을 하면 모든 자료를 손쉽게 입수할 수 있다. 수사기관은 손쉬운 길의 유혹을 늘 받을 수밖에 없다. 피의자 입장에선 자칫하면 스스로 제공한 자료들이 압수돼 불이익하게 사용될 것이란 우려를 거두기 힘들다. 결국 진솔한 의사소통에 제약을 받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 아울러 무죄 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수사 원칙을 지키기 위해 변호인의 비밀유지권 보장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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