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백> 아동학대를 감추기 위한 ‘레드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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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 외면한다고 외면되지 않는 현실이 존재하는 경우다. 아동학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이 그런 영화다. 이 감독은 <미쓰백>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에 대해 “고통받던 옆집 아이를 외면한 비겁한 자신에 대한 참회록”이라고 말했다. 아동폭력을 당하는 것이 틀림없는 옆집 아이를 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자책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영화의 모티브는 ‘원영이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의붓어머니가 베란다와 욕실에서 원영이를 상습폭행하고, 추운 겨울 락스 원액을 아이 몸에 뿌린 뒤 방치해 죽인 사건이다.

영화 <미쓰백>은 성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인 두 여성이 서로의 공통된 고통을 극복하는 우정과 연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 리틀빅픽처스

영화 <미쓰백>은 성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인 두 여성이 서로의 공통된 고통을 극복하는 우정과 연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 리틀빅픽처스

겨울밤 차가운 거리에 누더기 내복 한 장 입고 쪼그려 앉아 있는 아이가 있다. 누가 봐도 아동학대를 당하는 것 같은 아이 ‘지은’이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냥 지나치는데 지나치지 못하는 한 명이 있다. 그의 이름은 상아(한지민 분). 그냥 ‘미쓰백’으로 불러달란다. 살인미수로 전과가 있는 그는 세차장·마사지숍을 전전긍긍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자신도 힘든데 지은에게 자꾸만 마음이 간다. 그 역시 어린 시절 같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저하다가 말을 건넨다.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

미쓰백은 2층 배관 파이프를 타고 탈출한 지은을 안고 사라진다. 그제야 자신의 아동학대 사실이 알려질까봐 두려워진 의붓어머니는 친부에게 말한다. “그 여자는 전과자야. 유괴됐다고 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혼란을 유도해 상대방을 속이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레드헤링(red herring)’이라고 부른다. 레드헤링은 오래 보관하기 위해 훈제한 붉은색 청어를 말한다. 레드헤링은 냄새가 독했다. 잘 훈련된 사냥개도 레드헤링의 냄새에 후각을 잃을 정도다. 이를 이용해 18~19세기 레드헤링은 여우 사냥개의 후각을 단련시키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또 1800년대 영국의 죄수들은 탈옥 전에 레드헤링을 온몸에 비벼댔다. 감시견들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레드헤링은 훗날 논점을 흐리고 엉뚱한 곳으로 상대방의 관심을 돌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됐다. 예컨대 논쟁 중에 대뜸 “너, 몇 살이야”라고 말하며 말머리를 돌려버리는 경우다. 장유유서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의전환의 오류(red herring fallacy)’다.

경제학에서 레드헤링은 ‘판단을 흐리게 하는 거짓신호’로 본다. 대공황 이전의 미국 투자은행들은 새로 생겨난 기업들이 내놓은 초기사업계획서를 레드헤링이라고 불렀다. 초기사업계획서는 겉으로는 그럴듯한 내용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도 많았기 때문에 속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자 ‘블랙스완’이냐, ‘레드헤링’이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만약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된다면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블랙스완이 될 것이고, 코로나19가 기존 독감과 별 차이가 없다면 주식시장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돌리는 ‘레드헤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처음 유괴사건으로 봤다. 하지만 아이가 창밖을 통해 배관을 밟고 빠져나오는 장면을 자동차 블랙박스에서 확인하면서 수사는 아동학대로 방향을 튼다. 수사에 혼선을 준 레드헤링도 기록된 증거 앞에서는 더 이상 냄새를 풍기지 못했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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