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인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트레이번 마틴, 이베트 스미스, 에릭 가너, 마이클 브라운, 라퀀 맥도널드, 타니샤 앤더슨, 아카이 걸리… 조지 플로이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특유의 붉은 테두리 안에 흑인 35명의 이름이 길게 늘어섰다. <타임>이 표지 테두리를 사람들의 이름으로 장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상당수는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숨진 이들이었다. 6월 15일자 <타임> 표지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동생 필로니즈 플로이드가 6월 1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근처 광장에서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 경찰의 가혹행위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동생 필로니즈 플로이드가 6월 1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근처 광장에서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조지 플로이드는 지난 5월 25일 숨졌다. 위조지폐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은 비무장·비저항 상태의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했고,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있던 플로이드를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무릎으로 목을 강하게 눌렀다.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호소했지만, 경찰은 8분 46초 동안 계속 목을 눌렀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플로이드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부검 결과는 ‘경찰의 제압·구속·목 압박에 의해 심폐정지에 이른 살인’이었다. 사람이 무가치하게 죽어가는 영상은 봉기를 불렀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무질서한 항의 시위와 조용한 침묵 행진이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한국에선 인종차별을 이유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국내 체류 외국인의 수가 올해로 250만 명을 넘어선 지금, ‘제로’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에 따르면 국내의 인종차별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이주자 비율이 68.4%, 같은 대답을 한 공무원·교원의 비율이 무려 89.8%에 이르는 건 그 방증이다.

인종차별을 예방하고 제어할 국내 법제는 사실상 공백 상태다. 인종차별의 정의나 형태, 구제수단이 규정된 국내법은 현재 없다. 헌법을 필두로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막도록 하는 조항은 있지만, 선언적 규정에 그칠 뿐 실질적 구속력을 가진 조항은 없다시피 하다.

상당수 국가는 인종차별에 대한 정의와 구제,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독일은 “공공평화를 해칠 수 있는 방법으로 국적, 인종, 종교 또는 출신 민족에 의해 특정된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로 개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거나 악의적으로 멸시, 중상하여 그 존엄성을 공격하는 자”를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고 있다. 캐나다 연방 형법은 “범죄의 동기가 인종, 출신 민족 또는 종족, 언어, 피부색…(후략) 등의 요소에 근거한 편향, 편견 또는 혐오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나온 경우, 법원의 양형 가중사유로 규정한다.

‘다름’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성원을 혐오하고 배제하려는 압력이 일정 수위를 넘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누군가의 목숨값을 치러가며 보고 있다. 미뤄져 왔던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이 주목받는 이유다. 차별받은 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때, 비로소 차별은 사적 경험을 넘어 공적인 문제가 된다. 분노와 추모를 넘어 또 다른 차별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법률 프리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