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바뀐 집시법 개정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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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 3. 국무총리 공관….”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를 규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의 일부다.

5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21대 국회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입법 촉구 99% 상생연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5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21대 국회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입법 촉구 99% 상생연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2018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국무총리 공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있던 집시법 제11조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아무런 예외조항 없이 일정 거리 내의 집회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단이었다. 헌재는 2020년 1월 1일 이전까지 국회가 개정안을 만드는 조건을 달아 현행 법령을 유지했다.

집회의 자유란 ‘집회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집회의 장소는 특히 보호의 대상이다. 헌재는 “집회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 또는 집회와 특별한 연관성을 가지는 장소, 예를 들면, 집회를 통해 반대하고자 하는 대상물이 위치하거나 집회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 등에서 행해져야 이를 통해 다수의 의견표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집회의 장소에 대한 선택은 집회의 성과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라고 봐 왔다.

입법 시한을 넘긴 지난 5월, 20대 국회는 부랴부랴 마지막 본회의에 집시법 개정안을 들고 왔다. 통과된 법안은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제3호 국무총리 공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을 그대로 뒀다. 단지 ‘집회와 시위를 할 때 각 기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대규모 집회나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집회를 허용하도록 했을 뿐이다.

특정한 장소의 집회 자체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예외적인 금지 조항을 두라는 취지의 헌재 결정과는 거꾸로 기존의 ‘특정 지역 집회 원칙적 금지’ 방식을 유지한 셈이다. 집회의 금지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되는 종국적 수단이란 점에서, 개정안은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법안은 국민이 법령 자체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단 문제도 있다. 각 기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수 있는 시위가 무엇인지,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있는 집회라면 몇 명이 모여야 ‘대규모’ 집회가 되는지, 집시법을 적용하는 경찰이 개정안 관련 기준을 마련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아가 개정안의 모호한 조항은 경찰권의 자의적 결정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법의 합헌적 해석·적용이 원칙적으로 법집행기관에 맡겨진 사명이란 점을 감안해도 개정 집시법 조항은 사실상 국회·법원·총리공관 100m 이내의 정부 반대 집회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집회 현장에서 요건에 들어맞는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행정권이란 점에서다. 법률은 늘 최악의 권력을 상정해야 한다. 껍데기만 바뀐 법률이 과연 집회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해줄 수 있을까.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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