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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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맨 끝날, 도청을 선택한 사람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불혹을 맞았다. 해마다 5월은 그대로지만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 슬픔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떠나보낸 고통은 애도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애도는 필수적이다. 그때 그곳에서 스러진 사람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개인과 국가의 아픔은 치유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사회적 무당’이다. 망자의 가슴에 사무친 원한을 캐내 진실과 공감의 언어로 펼쳐내면서 한 서린 죽음을 씻어주기 때문이다.

한강 지음·창비

한강 지음·창비

하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처럼 어정쩡한 위로는 상처만 덧나게 할 뿐이다. 고통과 분노는 분출보다는 승화될 때 설득력을 얻고 보편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거룩한 분노’가 종교보다 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해 광주의 5월을 건너오지 못한 중학생을 둘러싼 산 자와 죽은 자의 증언을 통해 시대의 어둠을 밝혀주는 ‘램프’ 혹은 ‘촛불’이 되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인 주인공 동호는 전남도청 앞에서 총을 맞은 친구 정대를 찾는 과정에서 여고생 은숙, 미싱사 선주와 한 조가 되어 시신의 신원을 기록하는 자원봉사에 나선다. 소년에게는 국가에 의해 숨진 희생자의 유족들이 왜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지가 의문이다. 계엄군에게 죽을 것 같다면 다 함께 도청에서 피하면 될 일을 누구는 남고, 누구는 떠나는지도 궁금하다. 끝까지 도청에 머무르기를 고집하던 소년은 항쟁의 마지막 새벽 손을 들고나오다가 총격으로 죽게 된다.

동호와 함께 일했던 ‘생존자’들은 끔찍한 고통의 기억으로 망가진 삶을 살고 있다. 광주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해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혁명보다 강한 일상의 무게 때문에 습관적으로 생활은 이어나가지만 그들의 시간은 영원히 저녁에 머무르게 됐다. 아예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80학번 신입생 진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생하다가 10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때같은 자식을 앞세운 동호 엄마의 독백은 처절하다 못해 처연하지만 끝내 허공에 흩어진다.

읽는 내내 <사기열전>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현실에서 선악의 결과는 거꾸로 나타나니 하늘의 도는 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天道是耶非耶).”

그러나 인간은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 것으로 사람됨을 이룩한다. 예정된 운명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는 실존적 결단을 통해 인간은 자신과 공동체를 구원하는 것이다. 항쟁의 맨 끝날, 도청을 선택한 시민군은 그들의 피로 시민을 구하고 광주의 진실을 보존했다. <오월의 사회과학>을 쓴 최정운 교수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한 그들의 죽음이 없었다면 6월 항쟁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제5공화국의 치세는 계속되었을 것이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래형 시제가 아니었을까. 유리같이 연약하고 위태로운 존재가 인간이기에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이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은 공감과 공유를 통해 폭력에 맞서고 죽음을 넘어선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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