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동성애’가 무슨 상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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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 인기 밴드 ‘보이존(Boyzone)’의 전 멤버 스티븐 게이틀리는 2009년 10월 10일 숨졌다. 33세의 젊은 나이였다. 게이틀리는 보이존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99년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아 충격을 안겼다. 은퇴 후 동성애자 권리 옹호 운동을 벌이던 그는 2007년 연예계에 복귀해 영화와 TV로 활동 영역을 넓히던 중 마요르카섬에서 휴가를 보내다 급사했다.

5월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영주차장에 마련된 용산구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연합뉴스

5월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영주차장에 마련된 용산구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연합뉴스

난리가 난 건 그의 요절 때문이 아니라 다음날 실린 영국 <데일리메일>의 칼럼 때문이었다. 신문은 ‘천박한’, ‘쾌락주의적 유명 인사’라는 표현과 함께 별다른 근거 없이 그의 죽음이 동성애와 관련됐을 것이란 칼럼을 게재했다. ‘그의 죽음과 동성애가 무슨 상관이냐’라는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고, 급기야 성소수자 및 게이틀리 지지자 등 2만5000여 명은 영국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했다. 칼럼은 그해 최다 언론중재 신청을 당한 기사로 기록됐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용인의 거주자를 다룬 기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5월 초 연휴를 맞아 서울 이태원의 나이트클럽 5곳을 방문했는데, 한 언론이 확진자의 나이와 성별, 거주지 및 직장 소재 지역, 회사의 업종, 방문한 클럽의 상호를 공개했다. 문제는 이 언론사가 ‘단독 보도’라는 표제를 달아 뉴스 제목과 내용에 확진자가 방문한 클럽들을 이른바 ‘게이 클럽’이라고 못을 박았단 점이었다.

한국기자협회 언론보도준칙은 ▲성소수자를 특정 질환 등 사회병리 현상과 연결 짓지 않을 것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경우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밝히지 말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기사의 목적이 코로나19 확진 현황을 전달하는 것이었더라도 확진자 및 접촉자들의 성적 지향을 기사에 명시한 것은 준칙 위반 소지가 있다. ‘게이 클럽’이란 단어를 단순히 ‘클럽’으로 바꿔도 문제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동성애가 박해와 척결의 대상이 되어온 한국에서, 확진자 및 접촉자들의 성적 지향을 공개한 보도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의 노출이자 사인의 내밀한 비밀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재난상황과 맞물린 상황에서 소수자 집단에 책임을 돌리는 ‘혐오’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이 요구되는 시대 흐름에도 반한다.

이 같은 표현은 앞으로 자제되어야 한다. 질병 감염 우려가 높은 ‘클럽’에 간 무책임은 비판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게이’ 클럽에 갔다는 건 비판의 사유가 될 수 없다. 문명사회에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솔로든 누구나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이 불이익의 원인이 되어선 안 된다.

‘게이 클럽’ 기사로 성소수자들은 동선 추적 과정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광범위하게 침해당할 처지에 섰다. 자신의 성적 지향성이 밝혀지는 ‘아웃팅’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자진 신고의 의지를 상실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론이 오히려 방역을 방해했다’는 지적은 그래서 뼈아프다. 확진자가 게이인지, 레즈비언인지, 양성애자인지, 종교나 재산이 얼마인지는 방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기사가 영국에서 나왔다면 언론중재신청 건수를 또다시 갱신했을 법하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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