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래빗> 열 살 소년의 적극적 신념 표현 ‘미닝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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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취향이나 정치·사회적 신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미닝아웃’이라고 한다. ‘신념(meaning)’과 ‘나오다(coming out)’의 합성어다.

“나는 모든 힘을 다해 히틀러의 독일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한다. 나는 히틀러를 위해 내 삶을 기꺼이 포기하겠다.”

열 살짜리 철부지 어린이 조조 베츨러의 우상은 히틀러다. 히틀러는 위대한 아리아인의 조국, 독일의 영웅이다. 동경하는 히틀러는 환상이 되어 조조 곁을 떠나지 않는다. 조조는 꿈에 그리던 히틀러 유겐트(소년단) 훈련캠프에 일주일간 참여한다. 군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멋지다.

영화 <조조 래빗>은 전쟁 중의 세상을 열 살 소년의 시선으로 나치즘과 인종차별을 유머와 위트로 풍자한다./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조조 래빗>은 전쟁 중의 세상을 열 살 소년의 시선으로 나치즘과 인종차별을 유머와 위트로 풍자한다./유니버설 픽처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은 열 살짜리 조조의 시선으로 나치즘과 인종차별을 비춘다. 무거운 주제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 정의를 강요하기보다 유머와 위트 그리고 풍자로 감싸 안는다. 여러모로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교된다.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분)는 멋진 독일 병정을 꿈꾸지만 실은 토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할 정도로 여리다. 그래서 얻게 된 별명이 ‘조조 래빗’. 자신의 용맹성을 보이기 위해 멋지게 수류탄을 투척하지만 발밑에서 터진다. 큰 부상을 당한 조조는 유켄트 캠프에서 쫓겨난다. 전쟁과 정치에 빠져 있는 조조가 엄마 로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걱정스럽다.

반전이 일어난다. 우연히 2층 벽에서 유대인 소녀 엘사를 만난 것이다. 뿔 달린 사람으로 생각했던 유대인은 자신과 다를 바 없다. 조조가 묻는다. “유대인은 어디에 살아?” 엘사가 답한다. “네 머릿속에”.

열 살 조조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독일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는 위대한 나치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취향이나 정치·사회적 신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미닝아웃’이라고 한다. ‘신념(meaning)’과 ‘나오다(coming out)’의 합성어다. 과거에는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조직에 융화되는 것이 미덕으로 통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개인의 권리가 중시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기업은 보이콧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은 적극적으로 구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마케팅에서는 이런 현상을 ‘미닝아웃’이라고 부른다. 경영진의 갑질이 알려진 기업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불매운동이 일어난다. 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한 착한 기업에 대해서는 구매운동이 일어난다. 미닝아웃 소비현상은 소셜네트워크(SNS)의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는 자신의 소비를 표현하는 글과 사진들로 넘쳐난다. 트위트는 불매운동과 구매운동을 재빨리 퍼 나른다. 해시태그는 SNS의 전파력에 날개를 달아줬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자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일어난 것도 미닝아웃과 관련이 깊다.

기업들이 최근 들어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미닝아웃 소비와 맞물려 있다. 가성비보다 착한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렌드모니터의 2019년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90.7%가 ‘착한 소비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예로는 ‘친환경 제품 구매’와 ‘재래시장·전통시장 이용’을 꼽았다.

엘사가 말한다. “넌 나치가 아니야, 조조. 괴상한 군복을 입기 좋아하고 무리에 속하고 싶은 열 살짜리 꼬마야.” 흔들리는 조조를 상상 속의 히틀러가 달랜다. “(예전처럼) 하일 히틀러라고 말해줘.” 하지만 조조는 이제 전쟁과 나치의 잔혹함을 안다. 조조는 입술을 굳게 물고 미닝아웃한다. “꺼져.”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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