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은 범죄의 전조, 왜 법률 못 만드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남성 A씨는 2017년 8월 여성 B씨에게 닷새간 236회에 걸쳐 “교제하고 싶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B씨는 이미 연락을 원치 않는다고 밝힌 상태였다. 줄곧 응답이 없자 A씨의 문자메시지는 거칠게 바뀌었다. A씨는 회사에 전화해 B씨의 개인정보를 알아내려 하다가 급기야 “모든 것이 네 잘못이다. 연락에 응하지 않는 너와 그 주변 사람을 해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스토킹(Stalking)’이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에 가담한 사회복무요원 강모씨로부터 2012년부터 스토킹을 당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한 교사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에 가담한 사회복무요원 강모씨로부터 2012년부터 스토킹을 당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한 교사가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해외에서 스토킹은 처벌 대상이다. 미국은 ‘누구든 살인·상해·괴롭힘·위협의 의도를 가지거나 그러한 의도 아래 상대방을 감시하에 두는 일련의 행위 또는 그 결과로 상대방 내지 관련자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사망·중상해에 대한 합리적 두려움을 느끼게 하거나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합리적으로 기대·예상할 수 있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독일도 ‘타인에게 그 사람의 생활 형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방법으로 권한 없이 의사에 반하여 지속해서 접촉한 자’를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 처분을 한다. 일본도 ‘스토커 행위 등 규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반복된 따라다니기’ 등 열거된 행위에 해당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엔 이하의 벌금형으로 다룬다.

한국에선 경범죄처벌법상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 ▲지속해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따라다니기·잠복해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인 경우에야 비로소 최대 1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처벌 범위도 좁고 수위도 낮다. 특히 경범죄처벌법 요건에서 벗어난 유형의 스토킹에 대해선 ‘입법 공백’ 상태다. A씨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죄가 더해져 불과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은 안전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스토킹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국회의 태업은 사실상 헌법 위반에 가깝다. 1999년 ‘스토킹 처벌에 관한 특례법안’이 발의된 이래 20대 국회서 5개의 법안이 발의되는 등 스토킹 방지와 처벌 관련 총 14개 법안이 발의됐지만 단 하나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스토킹의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나아가 국가가 사인 간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에 대한 논쟁 때문이었다.

스토킹은 범죄의 전조다. 국회가 20년이 넘도록 법률을 만들지 않는 동안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n번방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빼낸 혐의를 받는 사회복무요원은 과거 자신의 담임교사를 스토킹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급기야 어린이집에 다니던 교사의 딸을 살해해달라고 청부했다. 한 대학생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교제하는 사람이 생기자 “다시 만나자”며 지속해서 스토킹한 끝에 피해자를 살해했다. 범죄는 결코 무균실에서 배양되지 않는다.

스토킹의 유형이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폭력 성향이 강해지는 국면에서 사인 간 관계에 공권력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입법 공백부터 해결해 최소한의 저지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스토킹의 유형을 나열·한정하는 방식으로라도 즉각 법령을 통과시켜야 한다. 누군가 목숨을 잃고, 그때 가서 또다시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을 만들 텐가.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법률 프리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