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파인튜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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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면한 지 2초 만에 사랑하게 된 사람. 같이 있으면 살아 있다는 느낌마저 줬던 그 인연과 남남이 될 것이라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철천지원수가 되어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이혼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 이야기>는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이다./넷플릭스

<결혼 이야기>는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이다./넷플릭스

로스앤젤레스(LA) 출신의 여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과 뉴욕 출신의 연극감독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는 이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둘은 원만한 이혼을 원한다. 아들 헨리를 위해서라도 친구처럼 헤어지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재산분할·양육권·위자료가 기다리는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망설이는 니콜에게 이혼전문 변호사 노라가 말한다. “(이혼은) 더 나은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희망에 찬 행동이에요.”

영화 속 니콜의 주변 인물 중에서도 이혼경력자가 많다. 미국의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건수)은 2.9건(2017년 기준)으로 한국(2.1건·2017년)보다 높다. 4건대였던 10년 전보다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6번째로 조이혼율이 높다. 세계에서 가장 조이혼율이 높은 나라는 러시아(4.8명)다. 영화 <결혼 이야기>는 골든글러브상과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미국 평단과 관객들에게 그만큼 큰 공감을 끌어냈다는 얘기다.

니콜은 결혼 이후 가정생활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사이 자신의 존재는 사라져 버렸고, 남편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 애지중지했던 아이도 자기 소유가 아니다. 찰리가 니콜의 출연료를 극단의 비용으로 쓰자고 했을 때 니콜은 이혼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혼은 벼락같이 오지 않는다. 불만과 불신이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바꿔 말하면 사전에 불만과 불신을 조금씩 해소시켜줬더라면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부부관계의 미세조정, 즉 ‘파인튜닝(fine tuning)’이 필요했다.

경제학에서 ‘파인튜닝’은 정부가 경제활동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해 재정·금융·환율 등의 정책수단을 ‘살짝’ 사용해 경제상황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과도하게 치솟는 서울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은 파인튜닝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 완화를 했지만 너무 많은 돈이 풀려 위태로워지자 소폭의 금리 인상과 테이퍼링(양적 완화로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조치)을 선택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정도 파인튜닝으로 볼 수 있다. 시장의 큰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정부가 시장원리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에서 시장 개입하는 것은 경제학에서 용인된다.

‘스무딩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도 파인튜닝과 뜻이 일맥상통하는 용어다. 외환시장에서 스무딩오퍼레이션은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안정화시키는 조치를 뜻한다. 투기세력이 끼어들거나 공포심리가 작용해 환율이 과도하게 상승할 경우 한국은행은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아 달러 강세를 진정시킨다. 미국도 이 같은 형태의 스무딩오퍼레이션에 대해서는 환율조작으로 보지 않는다.

결혼 이후 줄곧 낯선 뉴욕에서 산 아내 니콜에게는 결혼생활의 미세조정이 필요했다. 만약 1년 정도 처가이자 아내의 고향인 LA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니콜은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극단의 성공을 위해 줄곧 달려온 찰리의 눈에는 아내의 절망감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연착륙할 기회가 있었지만 찰리는 파인튜닝의 기회를 끝내 놓쳤다. 둘은 아름다운 이혼을 할 수 있을까.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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