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족을 위한 ‘파비우스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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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영화 <아바타 2>의 실사 촬영이 공식 종료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바타 2>는 후반 작업을 거쳐 2021년 12월 개봉된다. <아바타>(2009)가 개봉된 지 12년 만이다. 이어 2년에 한 번씩 새 시리즈가 개봉돼 2027년 <아바타 5>가 마무리된다.

영화 <아바타>는 전 세계 흥행 2위를 기록했고, 3차원 미디어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아바타>는 전 세계 흥행 2위를 기록했고, 3차원 미디어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 전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 <아바타>는 경이로웠다. 감정까지도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모션 캡처’는 매혹적인 영상미를 선보였다. 올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자리를 내어주기 전까지 <아바타>는 국내에서 역대 외화 중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아바타>의 무대는 판도라 행성이다. 이 행성에는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자원, 언옵타늄이 묻혀 있다. 자원개발사인 RDA는 판도라 행성에 기지를 만든다. 문제는 판도라 행성의 대기. 독성이 많아 사람이 자유롭게 호흡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아바타다. 아바타는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DNA와 인간을 섞어 만든 새로운 생명체로 인간이 뇌파로 조종할 수 있다.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는 아바타 ‘제이크’를 조정해 나비족에게 접근한다.

언옵타늄은 나비족의 신성한 나무인 홈트리 밑에 묻혀 있다. RDA사는 무력으로 홈트리를 쓰러뜨려 단숨에 언옵타늄을 채굴하려 한다. 하지만 제이크가 이를 막아선다. 나비족이 이주하도록 설득해보겠다는 것이다. RDA사는 제이크에게 나비족을 설득할 기회를 준다. 단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다.

제이크는 ‘파비우스의 승리’를 원했다. 파비우스의 승리란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혹은 피해를 보았더라도 결과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고대 로마의 장군인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알프스를 넘어온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에 대패하자 전쟁에 투입됐다. 파비우스는 연전연승하는 한니발과 정면대결을 벌이기보다 뒤를 쫓아다니며 식량보급로를 끊었다. 정정당당한 전쟁을 명예롭게 여기던 로마인들은 파비우스를 ‘한니발의 머슴’이라고 조롱하며 쫓아냈지만 로마군이 한니발에 대패하자 다시 불러들였다. 파비우스는 철저하게 한니발과의 전투를 피하고 카르타고 본국과 동맹을 치는 지구전을 10여 년 간 펼친 끝에 승리했다. 파비우스는 이후 ‘로마의 방패’라는 칭호를 얻었다. 카르타고는 한니발 이외에 유능한 장수가 없었고 수적으로 병사가 부족한 반면 로마는 수많은 장수와 군사가 있다는 것을 이용한 전략이었다. 우리 역사에서는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획득한 서희의 외교술이 파비우스의 승리로 기억할 만하다.

파비우스는 ‘페이비어니즘(Fabianism)’의 유래가 됐다. 페이비어니즘은 1884년 영국서 설립된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의 이념으로 급진적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사회주의로 변해가자는 주장이다. 페이비어니즘은 복지국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줬고, 영국 노동당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학자 케인스도 페이비언협회의 회원이었다.

파비우스의 승리는 투자나 경영에 있어서도 시사점을 준다. 언제나 강 대 강 대결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치킨게임’은 리스크가 크다. 때문에 쉬어가기 투자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병법의 ‘부전이승(不戰而勝)’과도 맥락이 같다.

RDA사는 결국 물리력을 택한다. 미사일과 레이저 등 앞선 과학기술력을 앞세워 활로 대적하는 나비족을 섬멸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 땅을 쉽게 내어줄 생명체는 없다. 겁을 먹고 도망가리라고 생각했던 나비족이 목숨을 걸고 결사 항전하면서 전세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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