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계층이동 가능성 낮은 ‘위대한 개츠비 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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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는 땅밑 특유의 곰팡내가 난다. 누군들 눅눅하고 퀴퀴한 이 냄새가 좋을까. 하지만 그곳에라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서민들이 있다. 땅값 비싼 서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도시 서민들의 이야기다.

영화 <기생충>은 상류층과 하류층, 두 가족의 만남을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위키피디아

영화 <기생충>은 상류층과 하류층, 두 가족의 만남을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위키피디아

기택네 4인 가족은 누구 하나 변변한 벌이가 없다. 피자 포장지를 만들어 받는 푼돈이 생활비의 전부다. 요금을 내지 못해 스마트폰도 끊기다보니 온라인으로 구직활동을 하기도 어렵다. 기택네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대만 카스텔라 프랜차이즈를 열었지만 망했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오롯이 담은 이 영화는 1000만 명이 봤다. 기택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 나온 시점이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기택네가 암울해 보이는 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주요한 사다리다. 하지만 아들 기우는 4수생이고, 딸 기정은 미대 입시에 낙방했다. 자녀들의 실력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기우는 명문대에 합격한 친구만큼이나 영어를 잘하고, 기정은 위조 여부를 알아챌 수 없을 만큼 포토샵을 잘 다룬다. 그럼에도 대입에 낙방했다면 혹시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부모의 정보력과 재력 없이는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한탄을 허투루 흘리기 어렵다. 합격했다고 한들 지금 상태로는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학비를 낼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졸업장이 없다면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 힘들다.

기택네뿐 아니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계층이동이 어려워지고 부의 대물림은 심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하위 10% 계층이 평균소득 계층에 진입하는데 5세대(150년)가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불평등과 계층이동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 있다. 마일스 코락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가 ‘대대로 이어지는 불평등’이라는 연구를 통해 소득 불평등(지니계수)과 소득 대물림 수준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도출한 곡선이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이 커질수록 세대 간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낮았다. 국가별로 보면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도 고소득층으로 계층이동이 쉬웠던 반면 미국과 영국은 계층이동이 쉽지 않았다. 앨런 크루거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2012년 백악관 경제자문관 시절 이 곡선을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라 명명했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맨몸으로 막대한 부를 일궈 상류층에 진입한 데서 착안했다.

기회의 불평등을 알 수 있는 지표로는 주병기 서울대 교수의 ‘개천용지수’가 있다. 주 교수에 따르면 중학교 국·영·수 학력평가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성적도 좋은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영어와 수학이 국어에 비해 학력 대물림이 심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주 교수는 선행학습을 얼마나 했느냐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했다.

기택의 아들 기우에게도 기회가 왔다. 명문대생 친구가 해외연수를 가 있는 동안 자기가 하던 부잣집 과외를 맡아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기우의 학력이 걸림돌이다. 방법은 있다. 재학증명서를 위조하면 된다. 아버지 기택은 위조된 서류를 들고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격려한다. 아들 기우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들어갈 거거든요”라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가난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기택의 가족에게 학력위조는 죄로 느껴지지 않았다.

기우는 마침내 과외선생님이 된다. 글로벌 CEO인 박 사장의 아내와 딸은 기우를 무한신뢰한다. 상류 인생에 기생충처럼 스며든 하류 인생. 이들은 성공적인 동행을 할 수 있을까.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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