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서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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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과 현실의 야만 폭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어린이의 필독서인 <이솝 우화>다. 동물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상의 세계를 상정하는 우화는 이성과 논리가 담아낼 수 없는 현실의 추악함과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화가 던지는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의 메시지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사실 험한 세상에 부합하는 처세의 매뉴얼은 우화이며, 그것의 꼭짓점이 <이솝 우화>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솝 우화>를 생존의 교훈담으로만 읽어내는 것은 일면적이다. 기원전 4세기부터 텍스트로 성립된 <이솝 우화>가 시간과 공간의 검증을 거쳐 고전이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김태환 지음·문학과지성사

김태환 지음·문학과지성사

독문학자 김태환은 <우화의 서사학>에서 근대 소설이 다양한 의미와 풀이를 낳는 열린 양식인 것처럼 <이솝 우화>도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는 열린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대다수 우화담이 등장한 배역들의 대사로 끝나는 것에 주목한다. 여물은 주지 않고 손질만 열심인 ‘말지기(horsekeeper)’에게 말은 항의한다. “건강하게 보이게 하고 싶으면 먹이를 더 주시오.” 높은 가지에 열린 포도를 따먹지 못한 여우의 코멘트다.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이야기의 결말이 제3의 서술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논평으로 끝나면 ‘미완의 상태에서 중단된 인상을 줘서’ 독자의 상상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말이 말지기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종결되면서 이야기 속에 나타나지 않은 말지기의 대답 혹은 말지기의 행동은 앞으로 바뀔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게 된다. 즉 의인화된 동물의 마무리 말이 충격과 변화를 수반하면서 우화는 끝없는 의문과 추측을 자아내는 서사가 되는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이솝 우화>는 음화적 수법의 전형이다. 세상살이의 슬기와 가르침을 제시하는 대신 거꾸로 인간의 탐욕과 무지를 부각하면서 현실의 야만과 냉혹을 가감 없이 폭로한다. 반면교사의 달인이다.

하나의 주체로 자립하려는 존재들에게 악인은 계속 접근해온다. 교활한 악한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살아남거나 아니면 피해를 입고 조롱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엄마로 가장한 늑대의 정체를 문틈으로 간파한 아기염소는 난세에 성명(性命)을 보존하는 약자의 생존 기술을 시전한다. 명령의 언어나 당위의 관념에만 집착하면 목숨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 약육강식의 현실 세계다. 항상 세상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림 형제의 동화에서 엄마 염소는 늑대 뱃속에서 새끼들을 구해내고 대신 돌멩이를 가득 채워 놓는다. 질서를 교란했던 늑대는 응징당하고 세상은 다시 평온해졌다.

그러나 실제는 이솝의 우화와 맞닿아 있다. 더럽고, 추하고, 짧은 세상에서 보통 선의는 악(惡)의 포장지로 활용된다. 겉모습이나 언어로 포착되지 않은 숨겨진 이해관계가 미덕이나 인정의 외피를 덮어쓰고 있다. 가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겉과 속을 꿰뚫지 못하면 자활과 자립은 사라지고 공동체의 안녕도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2500여 년 전 노예 이솝은 ‘의심’을 생존전략으로 내놓았다. 약속과 계약엔 더 회의적이어야 한다. 위반한 계약을 바로잡을 법이나 권위는 흔히 강자의 편이니까 말이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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