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캔 1만원’ 수입맥주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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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수입맥주는 한 병에 5000원 가까운 금액을 내야 사서 마실 수 있었다. 편의점과 마트에서 수입맥주를 살 수 있게 된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수입맥주는 국산맥주보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바로 그 맥주들이 언젠가부터 편의점에서 ‘4캔 1만원’에 판매되고, 올해에는 ‘5캔 1만원’, 특정 신용카드를 이용할 경우에는 ‘10캔 1만5000원’에 팔린다. 저가의 수입맥주가 아니라 불과 몇 년 전 한 캔에 6000원을 주고 사야 했던 바로 그 맥주가 한 캔에 1500원에 팔리는 동안 국산맥주의 가격은 과거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싼 수입맥주, 비싼 국산맥주’의 시대에 살게 될까?

수제맥주 양조장인 서울시 마포구의 미스터리 브루잉에서 제공하는 맥주들이 진열되어 있다./미스터리 브루잉 제공

수제맥주 양조장인 서울시 마포구의 미스터리 브루잉에서 제공하는 맥주들이 진열되어 있다./미스터리 브루잉 제공

우리 사회의 많은 의문들이 그러하듯, 그 답은 법에 있다. 맥주는 세율이 높은 술이다. 주세 72%, 교육세 30%와 부가가치세 10%가 부과된다. 그런데 국산맥주와 수입맥주의 세금 계산법에는 차이가 있다. 이것이 가격 차를 만들어낸다.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제품 원가)에 관세를 더한 것을 과세표준으로 삼아 세금을 부과한다. 맥주 판매를 위한 광고비 등의 판매관리비와 회사의 이윤은 그 위에 따로 붙일 수 있다. 반면 국산맥주는 제품 원가에 판매관리비(판관비)와 이윤을 더한 것을 과세표준으로 삼아 세금을 부과한다.

과거에는 맥주에 대한 관세가 30%에 달해 과세표준에 판관비와 이윤을 포함시키지 않아도 수입맥주에 대한 세금이 더 높았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맥주의 관세가 없어지면서 동일 원가의 맥주라 해도 국산맥주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부 외국 맥주회사들은 주세법의 허점을 노려 수입신고가를 낮춰 신고하고, 이후 이윤으로 이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한 회사가 230억원 상당의 세금 탈루를 하다가 관세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러한 주세법 체계가 ‘싼 수입맥주, 비싼 국산맥주’의 기반이다.

여기에 대해 국산 맥주회사들은 많은 불만을 표했다. 원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측정하는 ‘종가세’에서 주류의 양과 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측정하는 ‘종량세’로의 변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몇 년간 법이 바뀌지 않자 맥주 대기업들은 직접 맥주를 수입하고, 맥주의 재료를 싸게 해 원가를 낮추며, 맥아 함량을 낮춘 발포주를 출시하기도 하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이윤을 내고 있다. 직접 타격을 입는 곳은 소규모 수제맥주 제조 회사들이다. 2014년 주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맥주 제조장의 시설기준이 완화돼 중소업체가 수제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다는 매력에 수제 맥주 시장도 성장했다. 그런데 주세법의 허점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외국산 수제맥주 등에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국산 맥주에 대한 실질적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주세법 개정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법안이 표류하는 이유는 다양한 업계의 셈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4캔 1만원 맥주’를 놓치기 싫은 소비자들의 여론을 거스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시작엔 끝이 있듯 언젠가 법안은 통과될 것이니, 좀 더 합리적인 세제로 개편되기 전까지 잠깐의 행복을 즐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 또 편의점에 들른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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