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월> 5·16부터 10·26까지 18년의 ‘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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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지음·한길사

이병주 지음·한길사

한국의 정치 달력에서 10월의 비중은 상당하다. 올해 첫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부마민주항쟁이 16일 일어났고 불과 열흘 뒤 ‘박정희 대통령 유고’라는 시커먼 헤드라인이 도하 언론을 장식하면서 유신독재가 붕괴됐다. 늦봄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했던 박정희 장군은 깊어가는 가을밤에 숨지기까지 18년간 철권을 휘두른 권력자였다. ‘5000년 가난을 끝장낸 민족의 지도자’라는 환호성 저편엔 노동자와 농민, 학생과 지식인의 아우성이 맞고함을 치고 있다.

특히 대통령 직책뿐만 아니라 개인 박정희에게도 가장 비판적인 ‘인텔리’가 작가 이병주다. 박정희 장군의 술친구로서 교분을 나눴던 언론인 이병주는 5·16 쿠데타로 불어온 반공 광풍의 희생자가 됐다. 감옥에서 풀려나 작가로 방향을 튼 그는 현대판 사관(史官)이 되기로 작정한다. 한나라 무제의 횡포로 수난을 입은 사마천처럼 작중 주인공 이름을 ‘이사마’로 정하고 1961년 5·16부터 1979년 10·26까지를 기록한 ‘실록’을 썼다. 바로 소설 <그해 5월>이다. 실제 작가가 작중 화자와 겹치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사건이 허구가 아닌 논픽션으로 간주될 만큼 한국 현대사의 문학 버전을 방불하게 한다.

우선 <그해 5월>은 박정희 집권기를 장군의 시대로 규정한다. 군인의 목적은 전투와 전쟁에서의 승리다. 지휘관은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군대의 제일 덕목인 승리지상주의가 정치로 이식된 것이 장군의 시대이다. 오직 승리만을 추구하는 박정희 정권에서는 학자도 장군과 같은 철학을 가져야 하기에 유신독재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런데 군인은 정치인이 되면 안 되는가. 작가는 프랑스의 드골을 제시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승전국 지위로 올려놓았던 드골은 마지노선을 비판하고 기계화 부대를 강조한 탁월한 전략가였다. 게다가 정치가로서 드골은 헌법과 군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군인으로서 경력을 악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급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리력으로 집권한 정치군인을 꾸짖는 필봉은 매섭다.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독재자와 ‘오십보 백보’라는 것이다. 특히 말기에 이른 권력이 연출하는 타락상은 그 엽기성과 추잡함에서 소름끼칠 정도다. 2000년 전, 사마천을 탄압한 한 무제가 복술과 방술에 미쳐서 해괴한 행태를 남긴 것처럼 1970년대 후반 서울의 권력도도 망측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무리 허상이라도 한 번 세워지면 어떤 팩트를 갖고도 파괴하기 힘들다는 것이 작품을 관통하는 딜레마다. 나폴레옹이 실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식인귀’지만 유럽을 정복하고 스스로 보위에 오른 ‘황제 폐하’의 이미지로 새겨지는 것처럼 박정희 신화 또한 철옹성이었던 듯하다. 어쩌면 모든 해답은 시간이 아닐까. 정권을 뺏은 군인은 부패해졌고 야심은 양심을 내쫓았다. ‘안가(安家)’에서 권력의 심장이 정지한 것은 쿠데타를 혁명으로 포장한 것만큼이나 반어적이다. 5·16에서 시작한 18년의 시간은 ‘역사의 교통사고’였으며 성서를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는 부도덕 교육의 전성기였다는 것이 작가의 단호한 총평이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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