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이 있는 삶’에서 더 진일보한 사회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 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35년 전 김순석 열사가 서울시장 앞으로 남긴 유서의 내용 중 일부이다. 열사는 휠체어가 넘지 못한 도로와 가게의 턱들과 사회적 인식에 이렇게 분노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가 지난 9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팻말을 걸고 시외버스 문을 잡고 있다./연합뉴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가 지난 9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팻말을 걸고 시외버스 문을 잡고 있다./연합뉴스

김원영 변호사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장애인이 자유롭게 특정 장소에 갈 수 있는 권리를 ‘오줌권’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을 읽고 15년 전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외출을 할 때 “화장실 가는 게 어려워 하루 종일 물을 안 마신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7년 전 어느 저녁 휠체어를 이용하는 전문가와 회의를 하려고 서울 서초동을 돌아다녔는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카페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 선배 변호사님이 “최소한 장애인들이 1층은 들어갈 수 있어야 급할 때 화장실이라도 가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사회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대선 슬로건을 빌려와 ‘1층이 있는 삶’을 제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장애인의 시설물 접근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공중이용시설 시설주에게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문제는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많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음식점과 슈퍼마켓(편의점)은 바닥면적 300㎡(약 90평), 미용실은 500㎡(약 150평) 이상이어야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있다. 우리 동네에서 90평 넘는 식당과 편의점, 150평 넘는 미용실은 찾을 수 없다. 전국 통계를 봐도 90% 이상의 가게들이 모두 예외에 해당한다. 법령 개정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한편, 스타벅스는 최근 계단으로만 출입이 가능한 지점에 경사로를 설치했다가 건물주와 주민들이 보행자 안전 문제를 제기해 철거해야 했다. 이럴 때는 법보다 사회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굳이 없어도 되는 턱이나 계단이 ‘멋스럽다는 듯’ 설치된 가게도 있고, 경사로만 두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도 눈에 띈다. 하지만 장애인을 생각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건물에 다시 편의시설 설치 공사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용과 노력이 더 들어가므로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건축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제품, 시설, 서비스를 설계할 때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말한다. 이 디자인이 원칙이 되면 인식도 많이 바뀔 것이다.

‘1층이 있는 삶’ 다음에는 2층이 있는 삶이 아니라, ‘유니버설 디자인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우리나라의 수많은 김순석들이 가게 문턱에서 좌절하지 않고,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는 일상을 함께 누리길 오늘도 꿈꾼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법률 프리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