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사회> 재벌의 비자금을 위한 ‘돈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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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은 ‘욕망’이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많은 돈, 더 큰 권력을 갖고 싶어한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통해 그 욕망을 쟁취하도록 판을 깔아준다. 문제는 욕망이 항상 정상적인 방법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는 음모와 술수, 배신이 따라간다. 돈의 액수가 클수록, 권력의 강도가 셀수록 권모술수도 치명적이다. 변혁 감독의 영화 <상류사회>는 욕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속살을 비춘다.

영화 <상류사회>는 음모와 암투를 불사하며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부부의 이야기이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상류사회>는 음모와 암투를 불사하며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부부의 이야기이다./롯데엔터테인먼트

“왜 재벌들만 겁 없이 사는 줄 알았어?” 관장 자리를 꿈꾸는 미래미술관 부관장 수연(수애 분)은 당차다. 남편은 경제학 교수 태준(박해일 분). 민국당의 공천을 받아 정치에 뛰어든다. 저소득층과 소상공인에게 저리대출을 해주는 시민은행 설립안이 정치권에 먹혔다. 두 사람이 꿈꾸는 목적지는 ‘상류사회’. 힐러리와 클린턴을 꿈꾼다.

수연이 몸담은 미래미술관은 미래그룹의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금세탁 통로다. 그룹의 일가친척 혹은 측근들이 관장 자리를 도맡아온 것은 이 때문.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공이 필요하다. 수연은 기꺼이 돈세탁을 하는 악역을 떠맡는다. ‘돈세탁(Money laundering)’이란 돈의 출처와 행방을 감추기 위한 불법적 행위를 말한다. 1920년대 미국의 범죄조직들이 밀주 판매나 매춘, 도박 등으로 얻은 불법 수익금을 합법적인 자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썼던 속어다. 더러운 돈을 깨끗한 돈으로 바꾸기 때문에 ‘돈세탁’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설도 있고, 실제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여기서 벌어들인 돈이라고 주장해 ‘돈세탁’이라는 용어가 나왔다는 설도 있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자금세탁 행위를 재산의 발생 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거나 그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돈세탁은 돈의 꼬리표를 떼는 작업이다. 그래야 수익의 불법성이 드러나지 않고 세금도 피할 수 있다. 정·관계 로비용으로도, 혹은 사주 일가 개인을 위해서도 쓸 수 있다.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들도 돈세탁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무기를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한 미술작품 경매장. 저우장의 ‘용의 눈물’이 나왔다. 최초 제시가격은 170만 유로. 300만, 400만, 500만…. 계속된 응찰에 가격이 치솟는다. 낙찰가는 1000만 유로. 10배나 부풀려진 가격에 경매 참가자들은 놀라지만 수연은 담담하다. 이유가 있다. 작품을 파는 사람도, 응찰에 임한 사람도 사전에 모두 짜여진 대본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1억원짜리 그림을 100억원에 사서는 회사가 돌아가느냐”는 질문에 수연은 말한다. “100억원은 우리 손에 있어. 100억원에 산 작품을 전시회에 몇 번 돌려 소개하고 난 다음 은행에 담보잡혀 100억원 대출을 받으면 돼.”

100억원을 쓰더라도 회사 회계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100억원짜리 그림이 자산으로 잡혀 있고, 실제 대출을 통해 100억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미술품 거래는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즐겨 써왔던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품의 가격은 시장가격이 일정치 않아 가치를 필요한 만큼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삼성 비자금 사건과 연루돼 언론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참 이상해. 너희들은 왜 맨날 재벌 해체하라고 욕하고 데모하는 거니? 속으로는 부러워하면서. 잘 들어. 재벌들만 겁 없이 사는 거야. 당신은 그러면 안 돼. 겁내야지. 나도.” 미래미술관 민 실장이 상관인 오 부관장에게 퍼붓는 냉소다. 서글프게도 영화는 때로 현실을 투영한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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