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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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이란 현재 국민들의 뜻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나이브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국민들 모두에게 가장 옳은 방향을 찾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을 목표로 복잡하게 설계된 정치체제이다.

최근 일본 참의원 선거가 있었다. 참의원 선거의 핵심 쟁점은 1947년부터 시행된 현행 헌법의 개헌이었다. 특히 9조를 개정해 군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선거에서 일본의 국민 과반은 개헌을 공약한 자민당과 그 연립정당인 공명당에게 지지를 보냈지만, 개헌 발의 3분의 2 이상의 의석이 필요해 개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일본의 종전일이자 한국의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서 극우성향 ‘일본회의’ 계열 단체가 개헌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의 종전일이자 한국의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서 극우성향 ‘일본회의’ 계열 단체가 개헌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든다. 일본의 현행 헌법은 맥아더 장군과 미 군정의 강한 요구와 영향 하에 만들어졌다. 형식적으로야 일본 국민의 지지가 있었지만, 일본인들이 스스로 만든 헌법이라 보기는 어렵다. 현재 일본인의 과반수는 개헌을 원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이 헌법을 계속 따라야 할까? 이는 얼마 전 탄핵과 정당 해산을 모두 겪은 한국인에서도 유효한 질문이다. 국민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보다, 국회의원보다 헌법이 우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의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에 의해 제정된 법률보다 과거에 만들어진 헌법이 우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 국민주권이란 우리가 늘상 듣는 말이고, 우리 헌법 전문과 1조에 규정된 이야기이기도 한데, 어째서 국민 다수의 의사보다 헌법이 우위에 있는 것일까?

그 답에 대해 헌법이 갖는 권위의 원천이 무엇인지 많은 논의가 있다. 극단적으로는 헌법의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의 존재는 엘리트에 의한 민주주의의 파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또는 헌법이 효력이 있으려면 한 세대(30년)마다 한 번씩 국민투표로 동의를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헌법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존속에 헌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3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를 거쳐, 아무도 자유롭지 않은 일인 독재정을 향해 자발적으로 이행한다고 봤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당장 일본만 해도 ‘다이쇼 데모크라시’ 이후 최악의 군국주의 독재를 경험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했던 경험이 있다.

헌법은 원래 왕의 독재에서 국가와 개인을 지키는 기능을 했다. 미리 제정한 법률을 통해서만 통치할 때 개별 사안에 대한 즉흥적인 독재를 막을 수 있고, 개인의 권리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헌법의 역할은 다수의 독재에서도 동일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라는 기둥에 자신을 묶어 국민 다수조차도 헌법이라는 최고 규범에 어긋날 수 없도록 했다. 그리고 개정을 까다롭게 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는 자살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공화국이란 현재 국민들의 뜻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나이브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국민들 모두에게 가장 옳은 방향을 찾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을 목표로 복잡하게 설계된 정치체제다. 헌법은 여기서 국가의 나아갈 길에 대한 나침반이자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그들의 번영의 기반이 되었던 헌법을 바꿔 재무장하려는 일본의 시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개헌을 하게 되더라도, 부디 헌법의 의미 그대로 미래의 일본 국민과 세계를 위한 옳은 방향을 찾기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했던 과거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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