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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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대물림, 생활 터전을 빼앗긴 가족

난장이의 건너편에는 거인이 있다. 악당으로도 표현되는 거인의 세계와는 화해 불가능이다. 풀냄새와 고기 냄새, 빈자와 부자, 노동자와 사용자, 철거민과 투기꾼의 대립구도에서 난장이가 제몫을 차지하기란 요원하다.

조세희 지음·이성과힘

조세희 지음·이성과힘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첫 대목은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시 <자화상>의 첫 구절만큼 충격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서 잃어버린 아버지의 위상은 ‘잘살아보세’를 외치는 1970년대에도 회복되지 못했다. 작가 조세희가 1976년에 발표한 소설은 연작으로 묶여 2년 뒤에 같은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오늘날까지 300쇄를 돌파한 스테디셀러가 됐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산업화는 그 높은 성과만큼 골 또한 깊었다. 이촌향도 현상에 따른 빈부격차는 도시에서 극대화됐다. 본래 도시는 인간의 위신을 되찾기 위한 공간이었다. 중세 흑사병의 유행으로 내던져진 시신들을 보면서 자연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도시의 근대화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한국의 목동, 상계동, 사당동 곳곳에서 사람의 가치는 한없이 추락했다. 식사 도중에 예고없이 집을 무너뜨리는 서울의 철거 현장에서 인간의 자존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 같았다. 인간을 중심에 놓은 근대화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작가는 써야 했다.

낙원구 행복동의 무허가 주택에 살아가는 난장이(표준어는 난쟁이) 아버지는 칼을 갈고 수도관도 시공하는 기술자지만 대대로 이어온 가난에서 탈출하기 힘들다. 자식의 눈에 “아버지의 삶은 고통만 있었다.” 자녀들은 인쇄공장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의 대물림은 가혹하다. 철거 계고장이 날아오면서 생활 터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족의 선택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 아들들은 같은 노동자들의 배신으로 해고되고, 달나라로 여행을 꿈꾸던 아버지는 공장 굴뚝에서 추락하며, 딸은 부동산 투기꾼을 따라간다. ‘빼앗긴’ 아파트 입주권을 몰래 ‘찾아’왔지만 이미 아버지는 싸늘한 시신이다. 난장이의 건너편에는 거인이 있다. 악당으로도 표현되는 거인의 세계와는 화해 불가능이다. 풀냄새와 고기 냄새, 빈자와 부자, 노동자와 사용자, 철거민과 투기꾼의 대립구도에서 난장이가 제몫을 차지하기란 요원하다. 아니, 당대를 넘어 세습되는 가난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실제로 멕시코의 빈민가정을 추적한 <산체스네 아이들>, 철거 이후 25년에 걸친 한 가족의 궤적을 담아낸 <사당동 더하기 25>는 끊어지지 않는 빈곤의 쇠사슬을 증언한다. 불안정한 일자리, 낮은 교육, 위험한 주거환경 등은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직면했던 갈등과 모순의 뿌리인 동시에 가지로 더욱 몸피를 불리고 있다. 해답은 없을까? 연작소설인 <뫼비우스의 띠>는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두 아이 중 한 명의 얼굴은 깨끗하고 한 명의 얼굴은 더러울 때 누가 세수하느냐를 묻는다. 먼저 더러운 얼굴을 본 깨끗한 아이가 세수하러 간다는 답이 있다. 또다시 같은 질문을 던진 작가는 어떻게 한 명만 깨끗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빈부와 선악이 뒤집혀져 안팎이 전도된 현실이 있지만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난장이가 죽어가는 사회에서는 거인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소원처럼 이 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가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가야 할까! 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 뿐.(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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