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미약 이유 형 감경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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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심신미약 판정은 엄격하다. 피고에게 정신기능상의 장애가 있는 사실, 정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사실, 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모두 입증돼야 한다.

지난 4월 25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56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박상기 법무장관,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이(왼쪽부터) 박수를 치고 있다./김창길 기자

지난 4월 25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56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박상기 법무장관,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이(왼쪽부터) 박수를 치고 있다./김창길 기자

A씨는 2017년 4월 전남 순천 연향동에 있는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중 합석한 B씨를 처음 만났다. 둘은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다 B씨가 술에 취하자 인근 모텔에 들렀다. 그날 새벽 만취한 A씨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B씨를 폭행했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 세워 주먹과 팔꿈치, 발로 B씨의 머리와 얼굴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B씨가 완전히 정신을 잃었지만 A씨는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사건 직후 발견된 현장에서는 B씨가 흘린 피로 이불과 베개, 침대 시트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침대는 물론 화장대와 벽면, 화병 등에까지 피가 묻어 있었다. 24세인 A씨의 키는 184~185㎝, 체중은 87㎏ 정도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B씨는 체격이 크지 않고 술에 많이 취해 있어 최소한의 반항도 하지 못했다. B씨는 30살의 한창 나이에 그렇게 숨졌다.

법원은 A씨가 심신미약자라고 보고 징역 22년형을 선고했다. ‘술에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심신미약 판단이 나왔다’고 짐작한 사람들은 ‘심신미약이 또 잘못했네’라며 판결을 조롱했다.

그러나 A씨는 심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앓고 있었다. 2013년 군에 입대한 후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그는 이듬해 휴가를 나와 할머니로부터 핀잔을 듣고 난동을 부려 출동 경찰관에게 테이저건을 맞고 제압당했다. 그의 진료기록부엔 ‘양극성 장애 의증으로 자·타해의 위험이 있고, 현실 검증력이 저하된 상태로 보호병동 입원조치가 필요하다’고 기재돼 있다. A씨는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두통, 졸림 등 약물 부작용에 대한 불안으로 복용을 스스로 중단해 증상이 재발했고, B씨를 살해했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한 형 감경에 대한 오해는 뿌리깊다.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제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신체와 정신에 장애가 있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사람이 심신미약, 심신장애자다.

국민의 냉소는 이들 심신미약자에 대한 형 감경이 ‘밥먹듯이’ 이뤄진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술 마시면’ 심신미약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심신미약 판정은 엄격하다. 피고에게 정신기능상의 장애가 있는 사실, 정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사실, 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모두 입증돼야 한다. 단순히 경미한 정신질환이나 술을 마셨다는 것만으로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을 이끌어내긴 불가능하다. 애초에 수가 적어 대법원 차원의 통계도 없다. “개개 판사가 (심신미약 감경 선고를) 많아야 근무기간 중 서너 번 경험하지 않겠느냐”는 게 법원의 얘기다.

엄혹한 결과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오해도 크다. 동일한 행위엔 동일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심신미약자는 그 예외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형의 부과는 사회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법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옳은 말이다. 다만 영·유아나 A씨처럼 심한 정신질환자는 법을 지킬 능력이 없다. 처벌한다고 행동이 개선되거나 범죄를 예방할 수도 없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질 능력이 없는 자와 정상인을 똑같이 취급해 같은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게 법의 정신이다. 현대 법치국가 가운데 책임능력을 형 집행에 반영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백인성 변호사(<머니투데이> 법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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