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두렵지 않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과학의 대상으로 다가온 죽음

2년 전, 대한민국은 고령사회로 바뀌었다. 장수는 생명체의 꿈이자 의무지만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늙고 병든 몸을 스스로 돌보기 어렵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치매의 위험은 커져가기 때문이다. 사회가 노인을 돌본다고 하지만 언론이 고발하는 요양원의 실태는 우울감을 부른다. 유병장수(有病長壽)의 그늘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압도적이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조차 가난한 농부의 종살이를 하더라도 이승에서 살겠다고 할 정도가 아닌가.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전화윤 옮김·청어람미디어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전화윤 옮김·청어람미디어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상식적인 죽음관을 뒤엎는 책이다. ‘지(知)의 거인’ 혹은 ‘지식의 편의점’으로 수식되는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죽음을 꿈에 비유한다. 존엄사나 뇌사 등 인간의 종말과 관련한 현상들을 취재해 온 저자는 자연스러운 죽음이 좋은 꿈과 같다고 말한다. 사망선고까지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도 쇠약해진 뇌가 만들어낸 사실적(!) 판타지라는 설명이다.

다치바나에 따르면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인간은 죽어서 티끌로 환원되며 고유한 의식 따위는 사라진다는 관념이다. 사후세계는 사후세계가 있을 것을 바라는 집단소망이 빚어낸 꿈같은 대상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는 견해도 견고하다. 죽음을 학문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게 육체는 사람의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몸은 소멸해도 혼은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플라톤 철학의 후예답게 죽음은 육체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몹시 고대되는’ 시간이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언명을 원용하면서 이것은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991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NHK 방송과 만든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는 죽음에 대해 진전된 인식을 드러냈다. 임사체험도 뇌가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을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소개한다. 흔히 죽었다고 판정하는 심정지 후에도 수십 초에 걸쳐 미세한 뇌파가 계속 이어지고 신경세포 수준에서도 죽음의 찰나에 뇌의 활동이 수십 초간 활발해진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현상을 측정하는 기기가 개발되고 감도가 보다 정밀해지면서 사후세계나 체외이탈로 믿어졌던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해진 셈이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뇌가 빚어내는 작용을 ‘신비체험’으로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초월적인 관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이들의 진실 또한 존중돼야 한다. 특정한 사건과 사고를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객관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벗어던지는 일이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대로 죽음은 두려워할 때 아직 오지 않고, 찾아왔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으니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암과 심장병으로 투병하는 79세 저자의 전언이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이 한 권의 책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