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손배소, 경찰의 소 취하는 가능할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원전 관련 공론화위원회 때처럼 국무총리훈령 등으로 법적 근거를 만들고, 시민들이 국가 폭력과 관련된 손해배상소송의 소 취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면 어떨까.

쌍용자동차 예병태 신임 사장이 지난 4월 1일 평택공장을 방문해 생산현장 점검 후 직원과 인사하고 있다./쌍용자동차 제공

쌍용자동차 예병태 신임 사장이 지난 4월 1일 평택공장을 방문해 생산현장 점검 후 직원과 인사하고 있다./쌍용자동차 제공

2009년 5월 22일부터 2009년 8월 6일 사이 쌍용차 평택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경찰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단전·단수를 했고, 음식물·의약품·의료진 및 소화전을 차단했다. 경찰특공대가 투입됐고, 대테러장비인 테이저건과 다목적발사기를 사용해 노동자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헬기가 공장 상공을 근접비행하면서 강력한 바람으로 노조원들을 밀어냈다. 헌법재판소가 최근 위헌으로 결정한 최루액 혼합살수도 이뤄졌다.

지난해 8월 28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쌍용차 파업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파업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면서, 이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할 것 등을 권고했다. 9개월 가까이 흘렀지만, 소 취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의 취하는 원고가 스스로 자신이 제기한 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철회하는 것이다. 소 제기 후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어느 때라도 할 수 있다. 경찰은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 이후 소 취하를 검토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정권이 바뀌었을 때 소 취하에 관여한 사람들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나 업무상배임죄로 기소되는 상황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세월호 추모집회 관련 소송의 전례를 따르면 어떨까. 경찰은 세월호 추모집회를 연 유가족과 시민단체를 상대로 경찰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의 조정을 수용했다. 금전배상을 하지 않고 서로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 소송을 마무리했다. 문제는 쌍용차 관련 소송이 현재 대법원에 가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하지 않는 이상 법원의 조정이 불가능하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4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소송을 중단하라는 의견을 대법원에 표명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법원이 일방적으로 소송을 중단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권위가 경찰청장이나 소송을 수행하는 법무부 장관에게 소 취하를 권고하는 의견 표명을 해달라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이나 법무부가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도록 강제할 수단은 없다.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 정부는 2017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이라는 대선공약의 이행 여부에 관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다. 3개월간 토론 등 공론화 활동을 진행했고, 시민배심원단이 찬반투표를 벌였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 결정을 수용해 정책에 반영했다. 원전 관련 공론화위원회 때처럼 국무총리훈령 등으로 법적 근거를 만들고, 시민들이 국가 폭력과 관련된 손해배상소송의 소 취하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면 어떨까.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 진압 경찰들 역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이 상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 질문은 관료나 전문가집단이 아닌, 상처를 안고 있는 시민들에게 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임주환 법률사무소 종로 변호사·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

법률 프리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