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시대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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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은 왜 멸망했는가

고종을 둘러싼 통치집단 내부의 분열과 대립으로 대내외 정세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냉철한 판단이 내려지지 못하면서 국가적 위기관리는 실패로 돌아갔다.

오인환 지음·열린책들·2만원

오인환 지음·열린책들·2만원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은 현대에서 인간의 운명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고 술회했다. 개인과 기업, 국가의 진로와 존망까지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하는 것이 정치다. 국내외 정세의 거센 흐름을 인식하고 조응하지 못하는 조직과 민족은 침몰할 수밖에 없다. 문민정부의 시종(始終)을 같이한 오인환 전 공보처 장관은 21세기 한국이 국가적 위기를 보다 능숙하게 관리하려면 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을 벤치마킹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종시대만큼 세계 열강으로부터 갖가지 압력과 침략을 받은 위기는 사상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외환에, 내부의 민생파탄과 권력투쟁까지 겹쳐 조선의 위기관리는 실패했고 결과는 국망(國亡)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당대의 실패는 후대에 축복’이라는 말처럼, 고종시대의 좌절과 실책은 오늘날 가장 좋은 ‘케이스 스터디’로 활용될 수 있다.

저자는 500년간 다양한 위기관리능력을 축적해온 조선의 통치 엘리트가 왜 19세기의 내우외환을 넘어서지 못했는지 질문한다. 부정부패로 인한 사회 전분야의 양극화와 엘리트 충원구조의 붕괴, 그리고 세계 정세에 대한 정보 부족과 오판 등이 모범답안이다. 그러나 책은 위기관리의 주체인 ‘권력핵심부(inner circle)’의 인식과 실천에 주목한다.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했던 흥선대원군은 10년간 최고 의사결정권을 휘둘렀다. 동양의 3대 호걸이자 조선의 3대 개혁가로 꼽힐 만큼 과단성과 추진력을 갖춘 대원군은 서원철폐와 세제개혁 등을 밀어붙였다. 재정 기반을 확충하면서 단군 이래 가장 튼튼한 국방력을 갖춘 인물로도 평가받았다.

그러나 가장 유능한 위기관리자라는 대원군은 자신의 역량에 대한 오만과 오판으로 개방과 개화의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했다. 고종시대 대외 프로그램의 초기 값으로 설정된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망국의 경로가 됐다. 특히 위정척사 사상이 쇄국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새로운 현실에 대응할 사상과 논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게 뼈아프다. 게다가 성년이 된 고종의 친정 선언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한 대원군의 배신감과 증오심은 아들 부부에 대한 끝없는 복수혈전으로 이어졌다. 왕실과 조정은 두 쪽으로 쪼개져 지배층의 응집력과 유대감은 희미해졌고, 이것은 국가 위기관리능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외세 개입의 단서가 됐다.

결국 고종을 둘러싼 통치집단 내부의 분열과 대립으로 대내외 정세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냉철한 판단이 내려지지 못하면서 국가적 위기관리는 실패로 돌아갔다. 대원군을 비롯한 국정 담당자들은 원한과 복수에 사로잡혀 외세를 동원해서라도 정국 주도권을 잡겠다며 탈선했다. 즉, 공적 위기를 개인적 호기로 악용하면서 가족과 나라 모두가 망했다는 것이다.

반박도 만만찮다. 국사학자 이태진은 대원군과 민비의 대립, 그 사이에서 휘둘린 고종이라는 ‘삼각관계’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프레임 조작이었다고 비판한다. 일제는 고종을 망국의 암군(暗君)으로 몰고 대원군과 민왕후의 골육상쟁을 부각시키면서 조선이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강조하려고 역사왜곡을 했다는 것이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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