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운동에 동참한 이유는 ‘후회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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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뿐인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옥중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옥중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유관순 열사의 유언이라고 한다. 유관순. 그의 이름 석자를 한국인치고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유명세에 비하면 그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빈약했다. 조민호 감독의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그래서 반갑다. 조 감독은 유관순 열사에 대한 제대로 된 영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했다. 3·1절 연휴 사흘간 60만명이 이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 ‘열사 유관순’에 대한 대중들의 목마름이 그만큼 컸다는 말도 된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서울에서 일어난 1919년 3·1운동 뒤 고향 충남 천안 병천으로 간 유관순의 행적을 좇는다. 한 달이 지난 4월 1일(음력 3월 1일) 유관순은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다. 일제는 잔혹했다. 유관순 열사는 현장에서 양친을 잃는다. 체포돼 압송된 서대문감옥. 그는 여옥사 8호실의 ‘수감번호 371번’이 됐다. 1년 뒤인 1920년 3월 1일 유관순은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한다. 이어진 모진 고문은 열여덟 나이에 버티기 어려웠다. 출소 이틀을 앞두고 그는 옥사했다.

극중 옥에 갇힌 유관순은 ‘3·1 만세운동에 왜 참여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안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사람들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될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종의 후회의 기회비용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후회회피(regret aversion)’라고 부른다. 후회회피는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간에 따라 후회의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있었던 일 중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거 안 했어야 했는데”라고 답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때 그 일을 했어야 하는데”라고 답한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은 “20년 지나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후회하게 된다”고 말했다.

당첨 가능성이 낮은 로또를 매주 사는 사람의 행동은 후회회피로 설명이 된다. 미국의 경제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가 한 실험을 보자.

한 사무실 직원을 대상으로 복권 공동구매 신청을 받았더니 예상보다 참여율이 높았다. 왜 복권을 사기로 했는지 물었더니 답변자들은 “복권을 구입한 동료가 만약 당첨돼 회사를 그만두면 내가 비참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복권이 높은 당첨금을 제시할수록 후회의 기회비용도 커진다.

갖은 고초를 당한 유관순도 지쳤다. 극중 그는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고 뇌까린다. 그러자 다방 종업원 이옥이가 말한다. “지금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나는 다시 돌아가면 만세를 부를꺼예.”

일제 치하에서 민중들은 내 땅에 살면서도 개, 돼지 취급을 받았다. 만세운동에 참여해 고초를 당할지언정 동참하지 않아 느낄 후회의 기회비용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일제는 부랴부랴 문화통치로 전략을 바꾸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민중은 이미 주권국가의 공화국민으로 깨어났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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