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법적 개념과 사전적 의미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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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부터 다른 이 두 ‘양심’은 늘 갈등을 빚어 왔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용어 사용을 주장하는 것은 국어사전에서의 순기능적 의미에 무임승차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최근 일본에서 잇달아 초대형 산갈치가 발견된다는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산갈치의 출현이 지진이나 쓰나미의 전조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쓰나미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혹자들은 전문분야 용어인 쓰나미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자연재해대책법> 등에서는 ‘지진해일’로 명기되어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국방부 앞에서 이날 국방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영민 기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국방부 앞에서 이날 국방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영민 기자

때로는 용어의 사용이 국민 감정을 건드리거나 정치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정부가 일왕을 ‘천황’으로 호칭하겠다고 밝히면서 비난과 찬성이 각을 세웠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에 의해 사고가 형성되거나 대상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2007년 <계량에 관한 법률>을 통해 평, 근 등의 비법정 계량 단위의 사용을 금지할 당시 관련 부처는 “30평에 대해 말하기는 어려워도, 가로 세로 10m일 경우 넓이가 100㎡라고 떠올릴 수 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정부가 ‘장애자’는 ‘장애인’으로 ‘청소부’는 ‘미화원’으로 순화해 온 것도 인식의 재고를 위해서다.

언어의 힘이 이러하다 보니, 각 세력 간 혹은 정치권 간 어휘의 선택을 두고 치열한 갈등이 전개된다. 특정한 어휘의 유포를 통해 대중에게 의도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방부가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해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양심·신념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방부가 언급한 불필요한 논란은 ‘양심’의 법적 개념과 국어사전적 의미가 다르기에 벌어진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된 결정들에서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며 ‘사회 정의관이나 도덕률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 내용 여하를 떠나 보호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의 양심이란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로 정의되면서 그 사회의 보편타당한 도덕관을 지향한다. 즉 헌법 제19조의 양심은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보호될 대상이고, 국어사전의 양심은 보편타당한 옳음을 전제로 한다.

태생부터 다른 이 두 ‘양심’은 늘 갈등을 빚어 왔다. 어찌보면 침략전쟁 등에 대해서만 병역거부가 더 양심적으로 보이지만, 전세계적으로 특정 전쟁에 대한 병역거부는 인정하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찬성해 온 진영들이 국방부의 발표에 반발해 ‘양심적 병역거부’의 용어 사용을 주장하는 것은 국어사전에서의 순기능적 의미에 무임승차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언어를 통해 대중의 인식 변화를 꾀하려는 헤게모니 다툼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양심이기에 그 자체로 정당하거나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형성된 양심에 대한 사회적·도덕적 판단이나 평가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밝혔듯이 국어사전상 양심으로 헌법상 보호받으려는 양심을 평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즉 법적 양심으로 국어사전적 양심을 굳이 덮어쓰기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안다솔 다솔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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