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 벌어진 으름 씨는 새가 먹고
굴러 떨어진 헛이름은 개가 먹고
갓 벌어진 주름은 내가 먹고
군침 흘리던
해어름 먹구름은
나와 개와 새를 으르며
붉으락 붉으락 으름장을 펼쳐놓고
아뿔싸 입에 쩍쩍 들러붙은
가을
게으름이라니!
음 물큰한 처음
졸음처럼 들척지근한 죽음
음음 잘 익은 울음
오랜 으름 다 먹었다
해어름, 으름장, 게으름, 으름 열매 하나에 음음음… 으름씨처럼 이야기가 입에 달라붙어 들척지근하게 맴돈다. 새파랗던 으름이 가을 햇살에 하루하루 익었다. 누런 껍질 속의 새카만 씨는 어떤 이야깃거리가 되어 입 안을 맴돌까. 을러대지 않는 진솔한 대화가 한가위 달처럼 밝았으면 좋겠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정끝별(19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