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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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1960~ )

길을 가다 개미를 밟은 일
나비가 되려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던 애벌레를
밟아 몸을 터지게 한 일
풀잎을 꺾은 일
꽃을 딴 일
돌멩이를 함부로 옮긴 일
도랑을 막아 물길을 틀어버린 일
나뭇가지가 악수를 청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피해서 다닌 일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세지 못한 일
그늘을 공짜로 사용한 일

곤충들의 행동을 무시한 일
풀잎 문장을 읽지 못한 일
꽃의 마음을 모른 일
돌과 같이 뒹굴며 놀지 못한 일
나뭇가지에 앉은 눈이 겨울꽃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털어버린 일
물의 속도와 새의 방향과 그늘의 평수를
계산하지 못한 일
그중에 가장 나쁜 것은
저들의 이름을 시에 함부로 도용한 일
사람의 일에 사용한 일

일상으로 만나는 수많은 생명과 자연의 말들을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가 넌지시 말을 건네도 인간의 언어일 뿐. 어쩌면 가만히 밝은 눈으로 그저 말없이 바라보는 것이 알려고 하는 것보다 나을까. 마당 한편에 심은 배추 위를 나는 흰나비는 알을 낳을까, 배추벌레는 잡아야 할까, 고민이 가을바람 한 줄기에 설핏 따라왔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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