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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한 주
참 좋은 저녁이야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 유서를 쓴다면, 시인의 생은 한 편 시가 되고 소설가의 생은 한 편의 소설이 될까. 자신에게 상을 주는 마지막 저녁일까. 된장찌개 냄새가 유난···
[ 1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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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
도반(道伴)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준다 양파 접시 옆에 묵은 춘장을 앉혀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는 짜장면에 끌리는 날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준다 깨달음의 길을 함께하는 동반자를 도반(道伴)이라 한다. 휘이 둘러봐도 함께할 이 없는 날은 내 반쪽이 길을 함께하는 도반(道半)이다. 슬몃 내가 나를 끌고 짜장면 집에도 가고 주머니 털어 탕수육도 ···
[ 12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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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2 ]
나쁜 짓들의 목록
공광규(1960~ ) 길을 가다 개미를 밟은 일 나비가 되려고 나무를 향해 기어가던 애벌레를 밟아 몸을 터지게 한 일 풀잎을 꺾은 일 꽃을 딴 일 돌멩이를 함부로 옮긴 일 도랑을 막아 물길을 틀어버린 일 나뭇가지가 악수를 청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피해서 다닌 일 날아가는 새의 깃털을 세지 못한 일 그늘을 공짜로 사용한 일 곤충들의 행동을 무시한 일 풀잎 문장을 읽지 못한 일 꽃의 마음을 모른 일 돌과 같이 뒹굴며 놀지 못한 일 나뭇가지에 앉은 눈이 겨울꽃인 줄도 모르고 함부로 털어버린 일 물의 속도와 새의 방향과 그늘의 평수를 계산하지 못한 일···
[ 1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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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
으름이 풍년
쩍 벌어진 으름 씨는 새가 먹고 굴러 떨어진 헛이름은 개가 먹고 갓 벌어진 주름은 내가 먹고 군침 흘리던 해어름 먹구름은 나와 개와 새를 으르며 붉으락 붉으락 으름장을 펼쳐놓고 아뿔싸 입에 쩍쩍 들러붙은 가을 게으름이라니! 음 물큰한 처음 졸음처럼 들척지근한 죽음 음음 잘 익은 울음 오랜 으름 다 먹었다 해어름, 으름장, 게으름, 으름 열매 하나에 음음음… 으름씨처럼 이야기가 입에 달라붙어 들척지근하게 맴돈다. 새파랗던 으름이 가을 햇살에 하루하루 익었다. 누런 껍질 속의 새카만 씨는 어떤 이야깃거리가 되어 입 안을 맴돌까. 을러대지 않는 진솔한 대화가 한가위 달처럼 밝았으···
[ 1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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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8 ]
가을 맨드라미
1 근본 한미한 선비는 다만 적막할 따름이다 이따금 무료를 간 보느니 2 긴 여름내 드높이 간두에 돋우었던 생각의 화염을 속으로 속으로만 낮춰 끄고 있노니 유배 나가듯 병마에 구참(久參)들 하나둘 자리 뜨는 텅 빈 가을날 맨드라미꽃을 계관화(鷄冠花)라고 하여 가문에 벼슬하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는 뜻으로 마당에 많이 심었다. 그래봐야 닭볏이라, 이상과 현실이 다른 회한 속에서 하나둘 세상 떠나는 이들 소식에 붉은 맨드라미는 볕 좋은 가을날 유난히 더 붉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 1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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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
중력
문제는 무게다. 어떤 이에겐 구름도 무겁다. 명자나무 꽃 위 부전나비는 하늘을 들어 올린 채 날고 있다. 혼잣말을 하며 가는 사람 뒤를 걸으며, 나도 혼잣말을 한다. 혼잣말이 나는 가장 무겁다. 내가 나에게 말하고 짓눌린 채 한 번 대답도 못 했지. 살다보면 상대적으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만 있다. 그런데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것이 무엇인지 늘 궁금하다. 최저는 가벼운 것일까, 최고는 무거운 것일까? 혼잣말을 하고는 대답할 수가 없다. 오늘 눅눅한 밤공기가 무거운 것인가?
[ 12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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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
저녁의 미래
밤에 장미가 지는 것을 보고 아름다운 편지일 수도 있다고 생 각했던 공간 저녁의 미래, 지구의 밤 편지에는 시계가 없었지 별 같아서 언제나 과거에서 오는 별빛이어서 과거 없이 미래만 반복되는 지구여 그러길래 편지를 쓰던 우주의 빛이 이젠 내 과거가 되어 무한히 반복되는 저녁의 미래, 장미가 지는 공간 안에서 편지를 쓸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저 별은 우주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와 다오 와 다오 과거인 별들이여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링거병을 주렁주렁 달고서라도 별들이여 먼 과거의 미래를 네 눈 속에 안약처럼 날 넣어 다오 머나먼 별의 빛은 머나먼 과거의 빛, 내일도···
[ 1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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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0 ]
채송화
이 책은 소인국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을 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책 속 소인국으로 건너가는 배는 오로지 버려진 구두 한 짝 깨진 조각 거울이 그곳의 가장 큰 호수 고양이는 고양이 수염으로 알록달록 포도씨만한 주석을 달고 비둘기는 비둘기 똥으로 헌사를 남겼다 물뿌리개 하나로 뜨락과 울타리 모두 적실 수 있는 작은 영토 나의 책에 채송화가 피어 있다 내 꽃밭에는 채송화꽃이 한창이다. 늦봄에 몇 그루 사다 심었는데 꽃밭 한쪽을 채웠다. 통통한 잎눈이 떨어져 번진 까닭이다. 지금은 올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고 씨앗을 맺는 중이다. 쪼그리고 앉아야 만날 수 있는 꽃, 채송화는 잎겨드랑이에 바람···
[ 1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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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전기요금이 아까워 에어컨을 굳이 마다하시는 연로한 어르신이 안타까운 요즘, 한때 보일러 광고처럼 “부모님 댁에 에어컨 놔 드려야겠어요”가 머리에 맴맴거리고, 때늦은 후회로 가슴이 먹먹하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
[ 12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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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
정자(亭子)3
연못 속에 처박혀 구긴 정자에 들락거리며 구름은, 집달리처럼 구름은 다 불어 터진 서글픔들을 조금씩 꺼내다가 노을도 만들고, 잠기면 흩어진 별로도 만들고, 잠기면 지나가는 불빛으로도 만들고, 잠기면 모두 건져 네 귀퉁이 주춧돌만 풀에 덮어놓을 것이다 초인이 오기까지 돌들은 저희끼리 정다울 것이다 입추가 지났다. 더위도 아침저녁으로 주춤대는 듯하다. 한동안 햇살에 고개도 들지 못하다 문득 구름도 보고 노을도 본다. 네 귀퉁이 풀에 덮인 주춧돌 놓인 정자에 앉아 더 시원한 바람을 기다리고 싶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
[ 12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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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
얼음 호수
마지막으로 후투티 한 마리 바닥을 치고 날아간 다음, 호수는 서둘러 문을 닫았다 종적을 감춘 물을 바라보며 나무 한 그루, 제 가지를 흔들며 뒤척였다 햇빛은 기척도 없이 걸어 다녔다 어디선가 돌멩이 하나 날아와 떨어지자 흔적도 없이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끔씩 지나가던 바람이 문을 흔들어 보았지만 그럴수록 문은 더 팽팽하게 닫힐 뿐 대문 앞을 서성이는 발자국 소리처럼 한 차례 비가 쏟아졌다 우듬지에서 잔가지 하나 가벼이 떨어져 갸웃, 문틈을 내더니 단단히 영근 물집 하나를 기어이 톡, 터뜨리고야 만다 순간 시퍼렇게 멍든 수십만 개의 물방울들이 반짝이며 튀어올랐다 나무는 발가락을 ···
[ 12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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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제 당신이 정면입니다. 여기가 맨 끝이라 그러셨지만 맨 앞입니다. 새싹은 언제나 끝에서 나오는 법. 이제 시작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맨 앞입니다. 그 황망한 소식에도 희망의 정면에 우리는 서야겠지요. ···
[ 12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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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
양파 공동체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했다. 그곳에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러떨어진 양파는 첨벙첨벙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을 열면 미로들. 오랫동안 문 앞에 앉아 양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때때···
[ 12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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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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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선 기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그간 무수한 거부권 행사의 대상이 됐던 내란 특검법,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등 윤석열·김건희의 범죄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들이 마침내 심의를 거쳐 공포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국무회의 구성원 중 이재명 대통령을 뺀 나머지 회의 성원은 전부 얼마 전까지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의 거부권 남발에 거수기 역할을 해주던 윤석열 정권의 장관들이었다. 이날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은 몇 달 전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법안에 대한 의견을 번복해 대통령의 재가를 요청한 셈이다. 게다가 이날 회의장에 앉아 있던 장관 대부분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한 인원들로 내란 특검법의 수사 대상에 속한다. 회의장 속사정이 어땠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모로 불편한 분위기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