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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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있다. 검은 나무둥치와 검은 가지,
녹색의 잎들 사이로 신경이 엿보이는.
그 신경을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고, 잎이 손바닥을 뒤집고
나무의 머리칼인 푸른 살덩이가 송두리째
휘어지고 뒤집히며 얼굴 뒤의 가면을 보여준다.
비가 내린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눈앞에 비의 블라인드가 쳐지고 눈은 갇힌다.
비는 물방울 방울이었다가, 선이 되고
선이었다가 면이 되고 입체가 된다.
물줄기가 된다. 신경의 통로
물속에, 격렬한 역류 속에,
돌의, 풀잎의, 수피의, 잎의, 덩굴줄기의 신경이
하늘의 검은 공기 덩어리의 신경에 연결된다.
비가 온몸에 부닥친다. 심장충격기가 피를
가격하듯 대지의, 하늘의 신경이 맨살을
파고든다. 땀도 아니고 비도 아닌
언어가 몸에서 흘러나온다. 끈적끈적하고
무색의 번쩍이는 언어에 신경이 파고든다.
무의식의 검은 심연을 파고드는 뱀장어처럼
번개가 언어에 접속되고 신경 덩어리가
되는 언어들. 흙, 돌, 풀잎, 수피, 잎,
덩굴, 공기, 빗줄기 등의 단어들이
송두리째 산이 된다. 몸은
산에 있다.

인간만 알아듣는 언어는 얼마나 척박한가. 치열한 자연의 소리가 비명으로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본래 뜻을 그저 뭐든 사고파는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 그러해 본 적이 있을까. 천문학적인 돈으로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사오고 청정을 파는 행태가 우습지는 않을까. 저 산과 나무와 새들이 보기에는.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채호기(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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