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의 <외모지상주의>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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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가 변하자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가 180도 변한다. 작품 초반에는 그렇게 외모로 서열화하는 세상을 비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되면서 이 만화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외모권력을 누리는 이들의 이야기로 바뀐다.

인터넷에서 뉴스 검색을 하다가 ‘동일흉터 동일보상’이라는 기사 제목에 멈칫했다. 최근 불법촬영에 대한 성차별적 수사를 규탄한 여성들의 집회에서 사용되었던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떠올리게 한 구호였는데,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들게 했다. 기사는 최근 법제처가 차별법령에 대해 정비에 나섰다는 소식을 담았다. 모두 65건의 법령을 시정하는데, 양성평등과 관련한 대표사례로 ‘외모에 뚜렷한 흉터가 남은 경우’ 보상금액을 규정한 법령들을 든 것이다. ‘5·18보상법 시행령’, ‘어린이놀이시설법 시행령’, ‘재난안전법 시행령’ 모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는다. 여성에게 외모 손상은 더 큰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박태준 작가의 만화 <외모지상주의>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박태준 작가의 만화 <외모지상주의>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뚱뚱하고 키 작고 안경 낀 몸

일하다 다칠 경우를 대비한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여성(7급)과 남성(12급)의 ‘얼굴흉터’에 대해 등급 차이를 두다가 2003년부터 남녀 모두 동일하게(7급)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2002년 한 남성 택시노동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 ‘평등권 침해’라는 결정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적어도 ‘동일흉터 동일보상’은 이미 15년 전에 뚜렷한 진전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법제처가 올해 안에 관련 법령을 정비하게 되면 흉터 보상에서의 차별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동일흉터’이다. 2002년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인권과 성평등의 원칙을 천명한 것이면서 ‘인식 변화’를 촉구한 것이기도 했다. 여성과 남성의 흉터가 갖는 의미는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과 남성의 외모가 가지는 사회적 가치와 의미가 같거나 최소한 시간이 흐르면서 그 차이가 유의미하게 좁혀졌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네이버 인기 웹툰인 <외모지상주의>(박태준 작)는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데다가 괴롭힘과 따돌림의 대상이 되던 고등학생 박형식이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운 얼굴과 강한 ‘또 하나의 몸’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이다. 주인공의 내면은 변한 것이 없는데 외모가 변하는 순간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가 180도 변한다. 작품 초반에는 그렇게 외모로 서열화하는 세상을 비판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되면서 이 만화는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외모권력을 누리는 이들의 이야기로 바뀐다.

이 만화가 ‘외모’를 바라보는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품 속 무대는 남녀공학 고교이지만 기본적으로 이 만화가 그리고자 하는 건 ‘남자들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 주인공이 될 ‘외모’에는 아름다운 얼굴과 신체비례뿐만 아니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근육과 신경의 우월함이 갖춰져야 한다. 후자 없이는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서열의 후미로 밀려날 수 있다. 작품 초반에 주인공이 겪은 고난은 그가 못생겨서가 아니라 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만화에서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존재로 나오는 ‘잘생기지 않은’ 남성들은 외모에 대한 고민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주인공이 싸움을 못하거나, 돈이 없거나, 옷을 좀 후지게 입는다고 생각되면 깔아뭉개려 든다. 그러니 주인공의 ‘뚱뚱하고 키 작고 안경 낀 몸’은 못생겨서가 아니라 약해서 문제인 것이다.

주인공이 아름답고 강한 육체를 입는 것은 마치 아이언맨 슈트를 입는 것과 같다. 슈트는 폼이 나야 좋다. 그러나 폼만 나면 안 된다. ‘외모지상주의’는 마치 제목이 작품의 지향점인 것처럼 주인공의 잘생긴 외모와 남성적인 육체가 보여주는 폭력성에 대해 찬미한다. 이 작품은 초반에 주인공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겪는 부당한 일들을 극단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현실을 고발하는 역할보다는 주인공이 ‘모든 걸 가졌을 때’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내 ID는 성형미인>(기맹기)이나 <5㎏을 위하여>(글 수오수, 그림 홍끼) 역시 외모 변신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내 ID는 성형미인>은 <외모지상주의>의 박형식처럼 못생겼다는 이유로 각종 괴롭힘을 당하던 강미래가 성형으로 미인이 된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5㎏을 위하여>는 다이어트를 통해 자존감을 찾고 싶어하는 여성 오수의 이야기이다.

예뻐졌더니 그 안에서도 서열이 있다

<내 ID는 성형미인>의 강미래는 성형으로 예뻐졌지만 전형적인 성형미인이라는 점이 놀림의 대상이 된다. 예뻐지는 걸로 다 될 줄 알았는데, 예뻐지고 났더니 그 안에서도 서열이 있다. <5㎏을 위하여>에서 오수의 친구들은 날씬하고 예쁘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자신을 부러워하는 오수 곁에서 자기 외모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서만 말한다. 누군가 이 만화에 그런 댓글을 남겼다. 이들은 잘난 척이 아니라 “정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성들은 끊임없이 외모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 평가는 부위별로 세세하게 나뉜다. 얼굴만이 아니라 키와 몸무게, 머릿결과 색, 손톱과 발톱 모양부터 하다못해 성기의 모양까지도 어떤 게 예쁜 거라는 평가 기준이 제시된다. 평가가 존재하는 한 만족이란 도달하기 어려운 목적지다.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못생긴 여자의 역사>(클로딘 사게르 저, 호밀밭) 추천사에서 “여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늘 재현의 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에게 미모는 아이언맨의 슈트가 될 수 없다. 획득한 가치는 수시로 부정된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가치를 잃는다. 무엇보다 미모를 권력처럼 쓰는 여자는 용납되지 않는다. <외모지상주의>에서 남자를 호구로 여기는 예쁜 여자들은 폭력으로 응징된다. 얼굴에 주먹을 맞아 코가 주저앉고 배를 맞아 널브러진 여성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컷들은 (남성) 독자의 쾌감을 위해 계산된 장면들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여성도 늘 불안하다. <내 ID는 성형미인>이나 <5㎏을 위하여> 같은 여성 작가의 작품들이 아름다움과 인기를 얻고자 하는 독자의 환상과 줄타기를 하면서도 그 인식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은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현실적 조건을 반영한다. 같은 소재에서 출발한 작품들 사이의 이 엄청난 거리 차이 앞에서 나는 아찔함을 느낀다.

초등학교 고학년 딸이 있는 지인이 딸에게 주기적으로 화장품을 사준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화장은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또래문화가 되어 버렸고, 막다가 나쁜 걸 쓰게 되느니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안전한 제품을 주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외모에 대한 압박을 겪는 나이가 더 어려지고, 그 압박 또한 거세어졌다. ‘탈코르셋’ 운동이 퍼져나가고, 여자아이 모델에게 성인처럼 화장해주는 걸 거부하겠다는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선언이 화제가 되는 요즘의 모습들이 마치 필사의 항전처럼 느껴진다. ‘동일보상’은 현실화되어 가는데, ‘동일흉터’는 어째서 더 어려운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일까.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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