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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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를 제압한 유머, 세계사를 바꾸다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오노 히로유키 지음·양지연 옮김 사계절·1만6800원

우리 시대의 가장 끈질긴 음모론 가운데 하나가 ‘히틀러 생존설’이다. 남극 기지로 탈출했다거나 아르헨티나에서 목격했다는 가설항담이 지금도 회자 중이다. 최근 프랑스 연구팀이 러시아에 보관된 히틀러의 유골을 조사해 사망선고를 내렸지만, 그의 망령은 인류 역사에 끊임없이 출몰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총통’을 무너뜨린 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라는 점이다. <위대한 독재자>에서 찰리 채플린은 근엄한 히틀러를 유머로 제압하면서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북리뷰]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은 제2차 세계대전만큼이나 치열했던 두 인물의 이미지 전쟁을 다룬 책이다. 남극과 북극만큼 상반됐던 채플린과 히틀러는 1889년생 동갑내기다. 콧수염도 기르고, 예술가를 꿈꾸고,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좋아한 점도 같다.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고 했던가. 채플린은 인류를 웃겼지만 히틀러는 죽음을 선사했다.

익살꾼 채플린의 어린 시절은 불행 그 자체였다. 두 살 때부터 별거한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뜨고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격리당했다. 반면 자서전에서 ‘가난 코스프레’를 한 히틀러는 실제로 중류층 가정에서 무난하게 자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둘은 운명의 여신과 조우한다. 채플린은 할리우드에 입성하면서 은막의 스타로 떠오른다. 히틀러는 자원입대해서 참전하지만 독가스를 들이마시고 병원에서 패전의 절망만 맛본다. 그러나 애초 극좌파로 정계입문한 히틀러는 발군의 선전선동술로 31세에 나치당을 장악한다.

물과 불로 대별되는 두 인물은 대공황 이후 1930년대에 대결투를 벌인다. 채플린은 나치스의 애국주의가 전쟁만 낳는다고 비판하면서 히틀러의 신념과 정면충돌했다. 독일에서 채플린의 영화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진, 서적, 심지어 신문에서도 채플린이라는 이름은 금기어가 됐다. 그 와중에 채플린은 독재자 히틀러를 조롱하는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제작에 착수한다.

유럽에 전운이 짙어가던 1937년 10월에 막을 올린 프로젝트는 간난신고 끝에 1940년 10월 역사적 개봉을 맞는다. 당일의 사진을 보면 채플린은 사람의 바다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다.

<위대한 독재자>는 당시 독일에 떨어진 ‘블록버스터’ 폭탄처럼 히틀러의 이미지를 깊숙이 타격했다. 나치스는 방해공작에 나섰지만, 전 세계에서 단 넉 달 만에 3000만명이 관람했다. 하지만 압승한 채플린은 전후 히틀러의 유산에 시달린다. 숙적 히틀러는 사라졌지만 그 유령과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이 채플린의 운명이었을까.

강산이 두 번 바뀌면서 세계는 다시 채플린의 공적을 떠올렸다. 칸 영화제는 채플린의 모든 작품에 특별상을 수여하고, 영국에서는 기사 작위를, 할리우드는 아카데미 특별상을 줬다. 지금도 <위대한 독재자>의 연설 장면은 유튜브에서 조회수를 경신하면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인류의 염원을 웅변하고 있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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