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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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광고의 경계가 모호한 ‘빅블러’

‘빅블러’란 혁신적인 변화에 따라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모호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반드시 해야 하는 보도가 있다. 하지만 보도를 했다가 언론사가 문을 닫게 된다면?

1971년 <뉴욕타임스>가 ‘펜타곤페이퍼’ 특종을 한다. 펜타곤페이퍼란 트루먼부터 존슨까지 4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30년에 걸쳐 베트남에 군사적 개입을 했다는 내용을 담은 기밀문서다. 미 정부는 추가 보도를 할 경우 국가반역죄로 해당 언론과 언론인들을 구속시키겠다고 협박한다. 추가로 펜타곤페이퍼를 입수한 <워싱턴포스트>는 고심 끝에 후속보도를 결정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는 미국 언론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실화를 스크린에 담았다.

[영화속 경제]‘더 포스트’

경쟁사인 뉴욕타임스에 ‘물’을 먹은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 벤(톰 행크스)은 기자들에게 펜타콘페이퍼를 확보할 것을 지시한다. 천신만고 끝에 4000여 페이지의 펜타콘페이퍼를 확보하지만 문제는 보도다. 경영난에 빠진 워싱턴포스트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공개를 준비 중인 상황. 미 정부가 금지한 보도를 강행했다가 소송에 휘말리면 투자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최초의 여성 발행인인 캐서린(메릴 스트립 분)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버지, 남편이 운영해오던 가족기업이다. 편집국장 벤이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저널리즘은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저널리즘이 밥까지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언론사를 좋아할 정부와 광고주는 없다. 좋은 상품을 생산하면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생리다. 하지만 언론사가 생산하는 상품인 ‘기사’는 다르다. 좋은 기사가 곧바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사’라는 재화는 독자들이 돈을 내고 사보는 사적 재화면서 동시에 공익에 기여하는 공공재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재 성격을 가진 사적 재화의 특징을 십분 살린 것이 ‘기사 같은 광고’ 혹은 ‘광고 같은 기사’다. 인쇄기술과 IT기술, 방송기술의 발전은 기사와 광고의 벽을 더 빨리 허물고 있다. 이처럼 혁신적인 변화에 따라 기존 제품과 서비스간 경계가 허물어져 사라지는 현상을 ‘빅블러(Big blur)’라고 한다. 블러란 흐릿해진다는 뜻이다. 2013년 ‘당신이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조용호 저)’에서 처음 제시됐다.

예를 들어 은행에 가지도 않고 스마트폰에 깐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돈을 이체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된다. 핀테크는 금융이면서 동시에 정보기술(IT)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무인점포인 아마존고와 유기농식품 체인인 홀푸드를 운영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인 구글은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온라인와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Online to Offline) 업체의 출연은 빅블러 현상 중 하나다. 앱을 통해 차량을 요청하는 우버나 숙박예약을 하는 에어비앤비, 배달앱으로 식당 음식을 주문·배달할 수 있는 배달앱이 대표적인 O2O서비스다. 생체인증은 IT보안기술이면서 동시에 바이오기술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발달하면서 산업 간 업종 간 경계가 재빨리 허물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사업모델들이 나온다는 얘기다.

캐서린은 결단을 내린다. “이건 더 이상 제 아버지 회사가 아니고 제 남편의 회사도 아니에요. 내 회사예요.” 캐서린은 시민과 역사의 편에 선다. 캐서린은 믿는다. 신문이란 역사에 대한 초고라고. 세상은 점점 더 상업화되겠지만, 언론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저널리즘의 근본이 여기에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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