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성숙한 인간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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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공동체의 성숙한 인간이 되려면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우치다 타츠루·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 갈라파고스·1만2000원

올해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최근 1000년간 인류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사상가로 꼽힌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에비’였다. 그러다보니 ‘빨갱이’를 때려잡는 공안검사가 정작 공산주의의 원조인 마르크스도 모르는 블랙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했다고 작고한 리영희 교수는 증언했다. 노동계급의 바이블로 비유되는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은 1947년 첫 한글판 출간 이후 무려 40년의 고독 끝에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다시 세상에 왔다.

그러나 길이 시작되자마자 여행이 끝난다고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마르크스는 ‘죽은 개’ 취급을 받았다. 1980년대 대학가와 노동현장을 휩쓸었던 마르크스 열풍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지금 청년들은 사회과학 세미나 대신 취업 특강에 목을 매고 사회 정의보다는 개인의 생존에 골몰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사정은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일본의 철학자와 경제학자는 청년에게 마르크스를 읽자고 권유한다.

유혹하는 방식도 노골적이다. 마르크스를 공부하면 머리가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젊은이를 꾀어낸다. 실제로 인류학의 대가 레비스트로스는 마르크스의 저작을 몇 페이지 읽고 지적 워밍업을 한 다음에야 논문을 썼다고 한다. 마르크스 책을 펼쳐놓으면 머릿속 미세먼지가 말끔히 사라지면서 사고의 시정거리가 명료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사고의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당신이 철창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탈옥을 시켜주지는 않지만 감금된 생각을 빠져나오게 할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불교로 비유하자면 언어에 집착하는 수도자에게 벼락같이 내리치는 화두공안과 같다. 게다가 이 책은 자기계발서처럼 청년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권한다. 세계 역사의 분기점을 만들었던 ‘공산당 선언’을 쓸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불과 20대의 청춘이었다. 약관의 젊은이들이 세계사와 혁명과 미래 사회의 전망을 분석하고 진단하고 처방전까지 내놓은 패기와 이상에 전율과 감동마저 느꼈다는 것이 저자들의 고백이다. 누구는 매일 현실과 사투하는 청춘들에게 마르크스는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야말로 19세기의 가장 열악하고 힘든 시절을 견뎌내면서 개인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 ‘만년 청춘’으로 실천한 인물이다.

대학 교수인 저자들이 마르크스 독서를 권장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 추운 겨울에 걸인 한 명이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는 공동체의 원칙을 따르는 성숙한 인간을 만들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대립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공동체인가. 평등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흘러넘치는 사회를 꿈꾸는 한국의 청년들은 일단 마르크스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정승민 독서 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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