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포토에디터로 편안한 삶을 누리는 ‘코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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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는 16년째 잡지사 <라이프>에서 포토에디터로 일하는 42세 싱글남이다. 지금껏 특별히 가본 곳도 없고, 특별한 경험도 없는 초식남(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남자라는 뜻)이다. 평생직장이라 여겼던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단다. 마지막호는 전설적인 사진작가 숀이 보내온 사진을 쓰기로 한다. 숀은 그 중 25번 사진을 ‘삶의 정수’라고 강조했다. 어라, 그런데 25번 사진만 없다. 기한 내 사진을 찾지 못한다면 해고 1순위. 월터는 무작정 숀을 찾아 떠난다.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를 거쳐 아프가니스탄까지 뜻하지 않은 모험이 시작된다.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1인2역을 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일상의 노예가 되어버린 무력한 직장인의 이야기다. 행동은 차마 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공상만 하는, 길들여진 봉급쟁이의 모습이다. 1939년 쓰여진 제임스 서버의 동명 소설이 모티브가 됐다.

[영화 속 경제]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포토에디터로 편안한 삶을 누리는 ‘코쿤족’

월터의 직장인 <라이프>는 실제 미국에 있던 유명잡지다. 1936년 창간돼 1972년 폐간될 때까지 포토저널리즘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정간된 뒤 인터넷으로만 운영하고 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영화 속 <라이프>지의 모토다.

도전적인 사훈과 달리 월터의 삶은 평범하기 그지 없다. 잡지 표지에 쓰일 사진을 고르는 일이 포토에디터인 그가 해야 할 일. 출근하면 그만의 공간인 사진자료실에서 하루를 보낸다. 월터는 전형적인 ‘코쿤족(Cocoon族)’이다. 코쿤이란 누에고치를 의미한다. 코쿤족은 누에고치처럼 자신만의 안락하고 안전한 공간에 칩거하며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다. 미국의 마케팅전문가인 페이스 팝콘은 ‘코쿤이란 불확실한 사회에서 단절되어 보호받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코쿤족은 자신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소유할 능력이 있다. 이들은 안정된 수입원을 갖고 있으면서 업무능력도 뛰어나다. 이들이 홀로 있고 싶어하는 것은 재충전을 위해서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편히 쉬고 싶은 것이다. 사회생활을 멀리하면서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와는 다르다.

휴식공간은 집이 될 수도, 자동차나 사이버공간이 될 수도, 심지어 자신의 사무공간이 될 수도 있다. 집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민 뒤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며 피로를 푼다면 하우스코쿤족, 사이버 공간에서 게임을 즐기며 정신적 만족감을 찾는다면 사이버코쿤족이다. 월터는 회사 내 자신의 공간인 사진자료실에 머무를 때 안락함을 느낀다. 자신의 사무실 책상을 개성 있게 꾸미고 그곳에서 편안함을 찾는다면 ‘오피스 코쿤족’이다. 난을 키우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올려놓는 것은 필수.

코쿤족을 겨냥해 생겨난 집이 코쿤하우스다. 코쿤하우스는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 된 고시원으로 침대, 세탁기, 냉장고, 옷장, 책상, 샤워실 등을 갖춘 미니 원룸이 많다. 코쿤하우스는 저렴한 임대료보다는 편의성과 휴식성이 중요하다.

월터의 취미는 ‘상상하며 멍 때리기’다. 그가 상상 속에서 사모하는 여인은 회사동료인 셰릴 멜호프다. 그녀는 25번 사진을 찾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월터에게 말한다. “(숀에게) 가요, 가서 미스터리를 풀어요”. 그녀의 철학은 확고하다. “인생은 끊임없이 용기를 내며 개척하는 거예요”. 일상의 코쿤을 깨고 나온 월터는 히말라야 중턱에서 마침내 숀을 만난다. 숀이 말한 삶의 정수, 25번 사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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