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제국 소련이 몰락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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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기술 제국 소련이 몰락한 까닭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로렌 R. 그레이엄 저·최형섭 역·역사인·1만3800원

로렌 R. 그레이엄은 퍼듀대학에서 화학공학으로 학위를 받은 후 잠시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바꾸었다. 과학기술사, 특히 러시아의 과학기술사가 그의 새로운 전공이었다. 마침 1960년 최초의 미·소(美蘇)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모스크바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표트르 팔친스키라는 커다란 ‘비밀’에 가로막히고 만다. “소련의 역사 교과서는 대개 1930년에 러시아 엔지니어 여럿을 기소했던 산업당(Industrial Party) 재판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산업당 당수로 지목된 표트르 팔친스키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나는 1960~1961년에 모스크바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더 알아보려는 시도는 곧 소련식 비밀주의에 가로막히고 말았다.”(11쪽)

짐작할 수 있다시피 표트르 팔친스키는 숙청당했다.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활동했고, 러시아 혁명을 지지했지만 볼셰비키에 속하지는 않았으며, 결국 스탈린에 의해 처형당하고 만 불세출의 엔지니어.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은 바로 그 인물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이루어낸 얇은 책이다. 장장 30여년에 걸쳐 자료를 모았지만 번번이 소련의 비밀주의에 가로막힌 탓이다. 단지 팔친스키를 처형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 했던 것이다. 대체 왜 소련은 고작 한 사람의 엔지니어에게 이토록 가혹하게 대했던 것일까?

젊은 시절 표트르 크로폿킨의 아나키즘에 이끌렸던 팔친스키는 그러한 급진적 경향성과 엔지니어의 합리성을 결합시켜 나름의 세계관을 확립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효율성을 얻으려면 테일러·포드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엔지니어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적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비숙련 노동자를 상정한 테일러주의의 초보적 방식이 불필요할 정도로 노동자의 지식 수준을 높이는 데 있었다.”(78쪽)

당시 테일러·포드주의는 미국뿐 아니라 나치독일과 소련을 모두 매혹시킨 첨단사상이자 생산체계였다. 스탈린은 소련과 본인의 위신을 세워줄 중후장대한 댐, 철도, 운하 등을 요구했다. 팔친스키와 엔지니어들은 합리적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들이 ‘혁명의 적’으로 내몰린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스탈린이 혁명 전에 교육받은 전문가들을 불신했기 때문이었다. 스탈린은 혁명 직후 대학 교원과 엔지니어들의 파업을 조사하는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이 활동으로 기술 지식계급(technical intelligentsia)이 잠재적인 반혁명분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스탈린은 팔친스키가 소련의 산업화 전략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야심을 품고 있다고 보았다.”(83쪽)

지도자의 체면이나 이데올로기보다 공학적 합리성과 인간적 배려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엔지니어들을 숙청한 결과 “소련 경제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제거한 자리에는 선배들의 운명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인물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93쪽) 그 후로는 공산당의 비현실적 요구에 엔지니어들이 군말 없이 복종했다. 과잉생산된 철근이 녹스는 동안 치약이 없어서 이를 못 닦는 제국은 인민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결국 무너졌다.

<노정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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