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추석 연휴 열흘, 만화 보기

04 만화-모처럼의 휴식, 만화가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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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형편이 허락지 않는다면,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는 대신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을 펼치자. 이 만화를 보는 것이야말로 ‘여행’이다.

연휴에 쌓아놓고 보면 좋을 만화

추석 연휴가 길다. 주말에 개천절, 임시·대체 공휴일까지 합치면 최장 10일까지 쉴 수 있다. 짬이 나지 않아 미뤄뒀던 만화를 몰아 읽기에 제격이다. 마침 시기도 좋다. <송곳>(최규석·네이버 웹툰/창비)과 <빌리 배트>(우라사와 나오키·학산)가 최근 완결되었다. <베르세르크>(미우라 켄타로·대원)나 <바닷마을 다이어리>(요시다 아키미·애니북스), <미생>(윤태호·다음웹툰/위즈덤하우스) 같은 명작도 1년여 만에 신간이 나왔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속 깊고 의미 있는 작품들도 새로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재미난 집>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가 절판되었던 명작 그래픽노블 <펀 홈>(엘리슨 벡델·움직씨)이 ‘퀴어답게’ 재번역되어 다시 출간되었다. 도다 세이지의 감각적인 두 단편집 <이 삶을 다시 한번>과 <스키엔티아>(이상 애니북스)도 근간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적이면서도 독특하고 배울 것이 많은 작품 <골든 카무이>(노다 사토루·대원)도 이번 연휴에 쌓아두고 보면 좋을 작품이다.

만화 「골든 카무이」 한국어판 단행본 표지.  / 대원씨아이

만화 「골든 카무이」 한국어판 단행본 표지. / 대원씨아이

2016년 일본 만화대상 수상작인 <골든 카무이>는 작가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캐릭터 만들기와 이문화에 대한 태도가 돋보인다. 이를 체현하고 있는 인물이 두 주인공 중 하나인 아시리파다. 러일전쟁 직후(1905년 무렵)의 일본 북부 홋카이도, 퇴역군인 스기모토는 친구의 유언과 첫사랑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마침 막대한 양의 금이 홋카이도 모처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모험에 뛰어든 스기모토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첫 동료가 바로 아이누 소녀 아시리파다. <원피스>(오다 에이치로·대원)류의 동료 만들기와 모험활극이 펼쳐지는 듯도 하지만, 아시리파는 그 안에서 ‘홍일점’ 정도로 역할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오히려 아이누의 방식으로 스기모토와 독자를 이끈다. 멋있고 늠름하며 총명한 아시리파를 통해 아이누의 사냥·주거문화와 식문화 그리고 자연에 대한 철학 등을 알아나가는 일이 이야기만큼이나 흥미롭다. 권말마다 밝혀둔 참고문헌 페이지가 빽빽한데, 거개가 역사와 아이누 관련 문헌들이다. 좋은 작품을 위한 공부가 눈에 보인다. 전체적인 평가는 완결 후를 기약해야겠으나, 지금까지는 아주 훌륭한 문화적 다리를 놓고 있는 것으로 아이누 사람들에게도 고평가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일본어판은 11권까지, 한국 번역판은 7권까지 출간되어 있다. 연휴 시작 전에 8권이 출간되기를!

<조익상 만화평론가>

만화 「샌프란시스코 화랑관」 단행본 표지.  / 영컴

만화 「샌프란시스코 화랑관」 단행본 표지. / 영컴

멀리 떠나고 싶었던 당신을 위한 만화

추석 ‘황금연휴’를 맞아 ‘사상 최대의 인원’이 해외여행에 나설 것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명절은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라는 사전적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즐기는가, 누가 즐기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명절은 집이 아닌 다른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지는 때다. 게다가 노동자에게 짧은 휴가만을 허락하는(혹은 그마저도 안 주는) 한국에서 이때만큼 장거리 비행이 필요한 나라로 나가기 좋은 기회도 없다. 그러나 황금연휴의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을 경제적·심적 여유를 또 아무나 누리랴.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는 대신 <샌프란시스코 화랑관>(돌배·네이버 웹툰/영컴)을 펼치자. 삶과 사람, 나를 둘러싼 일상과 그 속의 관계들. 익숙한 풍경을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보게 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라면, 이 만화를 보는 것이야말로 ‘여행’이다.

이 작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웹게임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는 ‘이가야’라는 여성이 외로움과 외국생활의 어려움에 지쳤을 때 우연히 ‘화랑관’이라는 태권도 도장을 찾으며 시작된다. 가야의 내적 성숙과 무도인으로서의 성장은 흰 띠에서 검은 띠로 가는 태권도의 승급과정을 따라 차분히 전개된다. 기본 플롯은 예상 가능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전형성을 미끄러지는 다양한 인물들을 리드미컬하게 펼쳐 보이며 독자의 집중력을 붙잡아 둔다. 화랑관의 관장은 남자가 아니고 심지어 한국인도 아니다. ‘마스터’ 이바노바는 크지 않은 키의 구소련 출신 여성이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단순히 ‘의외성’만을 염두에 둔 선택은 아니다. 인터넷 연재 당시 ‘악역’이 없어서 좋다는 댓글이 많았는데, 이는 작가가 입체적인 캐릭터 구현에 성공했다는 것을 뜻한다.

악역이 없다는 말은 착한 사람들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분법의 사회에서 악의 반대는 선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이러한 세계관을 거부한다. 화랑관의 세계에서 ‘악’의 반대말은 ‘다양함’이다. 이 작품은 인물들을 단지 ‘역할’로 소비하지 않고, 그들 하나하나가 어떤 조건 속에 놓인 어떤 존재인지를 살필 줄 아는 미덕을 지녔다. 그래서 구태여 ‘위로’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읽는 이의 마음에 평화가 스민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만화 「오늘도 핸드메이드!」 표제 이미지.  / 네이버 웹툰

만화 「오늘도 핸드메이드!」 표제 이미지. / 네이버 웹툰

명절에 지친 당신을 위한 사려 깊은 만화

명절에 어딜 가든, 가지 않든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명절에 왜 아무 데도 안 가요?” 하며 속없이 파고들어오는 질문이나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예민한 말들이 마음에 깊이 생채기를 낸다. 이런저런 말들로 이미 상처 입은 추석이라면, 잠깐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이 웹툰 <오늘도 핸드메이드!>(소영·네이버 웹툰)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오늘도 핸드메이드!>는 핸드메이드 수공예를 취미로 삼는 작가의 생활툰이다. 웹툰 한 화당 무려 새로운 수공예품이 하나씩 제작된다.(가끔 너무 과로하는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솜씨 좋은 수공예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이 웹툰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가 지니고 있는 사려 깊은 태도다. 작가는 식물을 ‘친구’라고 부르고, 반려견을 위한 인형을 만들며, 자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에코백이 ‘에코백’이라는 이름과 달리 무분별하게 남용되어 오히려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걸 알고서는 하나의 에코백을 닳을 때까지 사용하기도 하고, 안 쓴 메모지들을 모아 다시 노트로 엮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동식물, 나아가 자연까지 따뜻하게 여기는 작가의 태도는 늘 소소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른 이를 배려하는 태도는 천성이기만 한 걸까. 일상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감정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상태를 반복적으로 반추한다. 반추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섬세하게 관찰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지향하는 바를 신중하게 사유한다. 이러한 작가의 습관이야말로 그가 지닌 삶의 태도를 지탱하는 뿌리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자기 자신과 배려 깊은 관계를 맺었을 때라야 자아 바깥의 세계와도 단단하고 깊은 관계가 가능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을 건넬 수도, 상처받을 수도 있는 명절. 서로에게 다소간 조심하는 대신 나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오늘도 핸드메이드!>는 나를 찬찬히 돌보는 법을 알려준다. 그래도 정 마음이 복잡하다면 완성품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작가의 수공예를 따라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모두에게 평안한 명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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