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추석 연휴 열흘, SF 읽기

03 SF-20세기 풍미한 고전, 영미권 ‘빅 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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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아서 C 클락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그리고 로벗 앤슨 하인라인의 <하인라인 걸작선>이다. 세 작가는 한때 ‘빅 스리(Big Three)’라는 하나의 통칭으로 불렸을 만큼 영미권 과학소설계를 선도한 거목들이다.

추석이다. 조상께 예(禮) 올리고 풍성한 차례상을 물리고 나면 보름달처럼 넉넉하니 시간이 남아돈다. 허나 명절에는 문 닫은 데 투성이고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친구를 불러내자니 눈총받기 딱 좋다. 차라리 바쁜 일상에 치여 미뤄둔 책을 집어드는 건 어떨까? 연휴인 만큼 한 권짜리보다 시리즈면 더 좋으리라. 그 중에서도 SF에 관심이 있으나 많이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번 기회에 ‘고전’을 권하고 싶다. 왜 하필 고전인가? 더구나 과학소설인데 웬 고전?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 황금가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 황금가지

무대를 항성으로 확장시킨 대하드라마

오해 마시라. 과학소설에도 고전이 있다. 벌써 역사가 200년이 다 되어가니 말이다. 그렇다고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처럼 이 장르문학의 현대적 효시로까지 되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대신 20세기 중후반을 풍미했으되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영미권 SF작가 세 사람의 대표작을 소개하려 한다.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고전으로 남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절판은커녕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작품이 작품성과 오락성 그리고 현대성을 고루 갖추었다는 뜻이다. ‘현대성’이라 함은 언제 다시 펴내도 후대의 독자들이 그 작품을 전혀 구닥다리로 여기지 않을 만큼 독창적이고 세련된 비전을 담고 있다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이 추천작들은 하나같이 최근 몇 년 새 초판으로 나오거나 재간되었기에 시중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아서 C 클락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그리고 로벗 앤슨 하인라인의 <하인라인 걸작선>이다. 세 작가는 한때 ‘빅 스리(Big Three)’라는 하나의 통칭으로 불렸을 만큼 영미권 과학소설계를 선도한 거목들이다.

아서 C 클락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 황금가지

아서 C 클락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 황금가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18세기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 영감을 얻어 무대를 항성 간 공간으로 확장시킨 대하드라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은하제국의 해체가 임박하고 장기간 암흑시대가 이어짐에 따라 민생이 도탄에 빠질 것을 일찌감치 예견한 수학자이자 사회학자 해리 셀던은 혼란의 과도기를 최대한 단축하고 문명의 재건을 앞당기고자 자신이 죽고 나서도 오랜 동안 계승될 방대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이를 달성하는 데 그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무력이나 첨단과학기술이 아니라 자신이 창안한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이라는 점이 이 소설만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심리역사학은 한 개인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아 적용하기 어려우나 큰 규모의 인구집단인 경우에는 그들의 미래가 어찌 전개될지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는 가상의 수리통계학이다. 프랙탈 이론과 나비효과 같은 현대물리학 관점에서 보면 역사를 수백 수천 년 앞까지 내다본다는 것은 과학적 개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꼭 미래학자뿐 아니라 어느 누구나 사회의 미래를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는 틀(조사방법론)이 있다면 실로 매혹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는 약 300만년 전 지구에 찾아와 인류의 진화에 개입한 외계 고도문명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연작장편으로,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해온 인류가 창조주는 아니지만 현재의 자신을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선주종족과 재회하는 이야기다. 특히 목성의 위성 유로파의 얼음지각 아래 거대 대양에서 또 다른 새로운 지적 생명이 잉태하는 데 이 외계 고도문명이 다시 한 번 개입하는 동사에 이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인류가 철저히 배제되는 현실은 우주에서 우리의 객관적인 위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해준다. 경이감과 오락성 그리고 철학적 깊이라는 세요소가 고루 안배된 수작이다.

로벗 앤슨 하인라인의 「하인라인 걸작선」 / 시공사

로벗 앤슨 하인라인의 「하인라인 걸작선」 / 시공사

화성에서 돌아온 지구 청년이 보는 세상

<하인라인 걸작선>은 하나로 이어진 시리즈는 아니나 ‘Mr. SF’로 불릴 만치 SF 장르의 대표작가로 인식되어온 하인라인의 다채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함께 들어 있어 눈길을 끈다. 모두 다섯 권짜리 이 전집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한 복수극을 그린 <여름으로 가는 문>과 우주판 정치드라마인 <더블스타>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인다.

반면 나머지 셋은 <우주의 전사>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극력 옹호하던 극우성향의 하인라인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한때 미국에서 유행했던 뉴에이지 풍조를 의식한 <낯선 땅 이방인>은 화성인들 손에 키워진 순진무구한 인간 청년이 지구에 돌아와 혼탁한 자본주의사회에 휩쓸리다보니 끝내 순교하는 메시아가 되는 이야기다. 화성인과 다름없이 세상을 맑게 바라보는 청년을 등장시켜 작가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타락해 있는지 우회적으로 풍자한다. <프라이데이>는 외견상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유전공학적으로 강화된 한 여성의 인생편력을 그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가부장제도나 일부일처제 대신 집단혼(集團婚)이라는 대안가족제도를 노골적으로 실험하고 있어 발표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집단혼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인 시선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주인>에서도 재차 발견되는데, 이 작품은 이번 선집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전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타이틀은 <하인라인 판타지>다.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이 중·단편집은 딱히 SF로 분류하기 애매하거나 아예 판타지에 가까운 하인라인의 작품들도 더러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마법회사>와 <조너선 호그의 기분 나쁜 직업> 같은 중편들이 눈길을 끈다. 전자는 다른 것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와 하등 다를 바 없지만 생뚱맞게도 마법이 우주를 관장하는 물리법칙의 하나로 버젓이 통용되는 세계의 이야기로, 미국 정계의 정치적 협잡과 뒷거래 흥정을 풍자한다. 후자는 인간의 외모를 하고 숨어 살며 세상을 지배하려드는 선주종족과 이들을 정리하고자 강림한 자칭 ‘예술평론가’(실제로는 선주종족 말살자)의 불가사의한 싸움에 말려든 평범한 탐정 부부의 재난을 그린다. 물론 이 중·단편집에는 4차원 초입방체의 전개도처럼 지은 집에 지진이 일어나는 통에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갇혀버리는 <그리고 그는 비뚤어진 집을 지었다>와 아이와 엄마, 아빠가 실제로는 모두 동일인물이지만 시간여행을 통해 세 사람의 관계가 가능해지는 기괴한 역설을 그린 <너희 모든 좀비들은>처럼 전형적인 SF 수작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제까지 소개한 셋 중 어느 것이든 연휴를 일분일초라도 더 늘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고장원  SF 평론가·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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