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추석 연휴 열흘, 무엇에 빠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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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드라마, SF, 만화, 추리소설은 어떠세요

사상 최장이라는 열흘간의 추석 연휴다. 전례없이 긴 황금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만 12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호텔에서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이른바 ‘호캉스’ 역시 유행이다.

그러나 외국으로 훌쩍 떠날 비행기표나 값비싼 호텔 숙박권을 덜컥 결제하기엔, ‘욜로하다 골로 간다’는 유행어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당신이라면…?

그래서 준비했다. 이름하여 ‘열흘간의 덕질 입문 가이드’. 열흘간 독파할 수 있는 SF시리즈, 미스터리 연작, 고품격 만화와 드라마 시리즈물을 만나 보자.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입문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시리즈물을 엄선했다.

떠나지 못한다고 해서 휴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마이 셰발 소설의 예리한 형사들과 함께라면 내 방구석 안이라 한들 북유럽의 광활한 설원보다 못할 법도 없고, 새로 우리 앞에 나타난 빨간머리 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추억의 ‘초록지붕 집’도 가까이 있지 않을까. 취업, 결혼, 둘째아이 성화에 차라리 ‘명절을 폐지하고 싶은’ 가사노동 후유증까지. 그 모든 피로를 떨쳐내고 오로지 ‘나’의 힐링을 위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자. 풍덩~


[추석특집 추석 연휴 열흘, 책 읽기]

01 책-장식으로 모셔둔 ‘벽돌책’에 도전!

「율리시스」와 저자 제임스 조이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율리시스」와 저자 제임스 조이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동서문화사

/ 동서문화사

자타공인 여행문학의 대가 폴 서루의 <아프리카 방랑>은 여행의 한유(閒遊)를 즐기기보다 역사와 문학·예술 등을 자유자재, 종횡무진 엮어내면서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책이 좋아 책더미 속에 묻혀 살지만 종종 숨이 ‘턱’하고 막히는 책들이 있다. 어려운 책들이야 출판평론가라는 직업인의 숙명이니 그렇다 치고, 적잖은 분량에 먼저 압도되는, 일명 ‘벽돌책’ 앞에서는 장사 없다. 적어도 하루 한 권은 읽어야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벽돌책은 제아무리 함량이 충실해도 여기저기 소개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번듯한 장식처럼 오래도록 서가에 꽂혀 있을 수밖에. 기회다. 길게는 열흘이나 되는 추석 연휴, 그간 고이 모셔둔 벽돌책 몇 권을 뽑아들었다.

첫 번째 도전 상대는 대하소설이나 시리즈를 빼고는 소설 중 벽돌책의 최고봉으로 꼽을 만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사실 <율리시스>는 1000쪽 가까운 분량이 문제가 아니다. 1904년 6월 16일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채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일 뿐인데,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출몰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줄을 잇는다. 더 결정적인 것은 주인공의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일들 와중에 미사에 참여했다가 간음하고, 사창가마저 자유롭게 활보하는 일들이 중첩된다는 사실. 그 와중에 아내를 위해서도 갖은 애를 쓴다. ‘이건 뭐지?’ 하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올 수밖에 없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전통과 윤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율리시스>를 읽는 일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율리시스>는 지금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작품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책 서두에 “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썼는데, 이 때문인지 김종건 고려대 명예교수는 <율리시스> 번역에 50년 가까운 세월을 바쳤다. 리오폴드 블룸과 아내 몰리 블룸, 그리고 젊은 예술가 스티븐 데덜러스의 하루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궁금하다면, 이 한 권만으로도 추석 연휴는 충분할 터.

[추석특집]추석 연휴 열흘, 무엇에 빠져볼까

불과 하루를 1000쪽에 쓴 <율리시스>

두 번째 도전 상대는 <율리시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읽기에 쉽다. 8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도 흔쾌하다. 자타공인 여행문학의 대가 폴 서루의 <아프리카 방랑>이다. 폴 서루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를 여행했고, 1960대에는 평화봉사단원의 일원으로 말라위와 우간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틈틈이 아프리카의 현실을 알리는 글을 세계에 전달했고, 소설도 썼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시작된 아프리카 종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으로 이어진다. 폴 서루는 여행의 한유(閒遊)를 즐기기보다 역사와 문학, 예술 등을 자유자재, 종횡무진 엮어내면서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의 정치와 사회적 모순을 적시하면서, 마치 장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자아낸다. 그야말로 벽돌책이 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폴 서루의 여행문학이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비록 510여 쪽으로 벽돌책의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여행자의 책>도 함께 권한다.

도전하는 김에 그간 자주 손이 덜 간 분야 책 한 권을 선택했다. 분류 주체에 따라 인문/심리분야에도 속하고, 과학분야에도 들어가는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이다. 이제까지 마음은 마음대로 정의해온 게 사실이다. 당연히 마음의 작동 방식 역시 마음대로 해석하고, 그대로 통용되었다. 스티븐 핑커는 그 빈 자리를 치고 들어가 무려 960여 쪽에 달하는 벽돌책 하나를 우리 앞에 내놓았다. 지금은 상식처럼 인식되지만, 마음과 뇌는 별개라는 통념을 깨고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뇌의 활동”이라고 역설한다. 또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마음이 변한다’는 우리 옛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 즉 마음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이 세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답게 스티븐 핑커는 마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화했는지, 특히 자연선택에 의해 인간의 마음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지 소상하게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삶의 궤적을 나눠야 하는 추석 연휴. 각 사람의 마음이 어디서 발현되고 표출되는가를 알고 싶다면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제격이다.

[추석특집]추석 연휴 열흘, 무엇에 빠져볼까

인간의 좌표를 새롭게 물은 <돈의 철학>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마지막 도전자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분량부터 남다르다. 무려 1100쪽 가까운, 하지만 분량만큼이나 내용의 함량도 충실한 독일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이다. <돈의 철학>은 출간 시기를 알아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이 책은 1900년 출간되었는데, 이제 막 자본주의는 세계를 집어삼킬 준비를 마친 때였다. 돈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할 희망과도 같았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돈의 위력 앞에 절망해야 하는, 이를 테면 소외된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때 게오르그 짐멜은 화폐경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자본주의 비판의 깃발을 든다. 일단의 비평가들은 짐멜이 “더 나아가 문화 비판 또는 시대 비판”을 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기말의 암울함 혹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던 시기, 짐멜은 <돈의 철학>을 통해 인간의 좌표를 새롭게 물었다. 짐멜이 일갈한 대목이다. “돈은 어떻게든 무차별화되고 외화(外化)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이다. 그러나 돈은 또한 오로지 개인의 가장 고유한 영역 내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가장 내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돈은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사회적인 산물로 인간의 삶, 즉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연히 객관 문화라고 일컫는 ‘물질문화’와 주관 문화라고 불리는 ‘정신문화’가 돈이라는 하나의 사물에 깃들 수밖에 없다. 짐멜은 과거 돈이라는 상징을 통해 정신문화가 쇠퇴하고 물질문화가 득세하는 세상, 즉 돈과 영혼이 결합한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돈의 철학>을 통해 전개한다. 100년도 더 전에 출간된 책이라고 낡은 생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짐멜이 예견한 물질문화가 승한 세상은 오늘 우리 시대에 더 심각해졌다.

어디 읽을 만한 벽돌책이 이뿐이겠는가. <젠틀 메드니스> <축의 시대> <광기와 문명>은 물론 고래학 교과서로도 손색없는 <모디빅>을 더 언급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모쪼록 추석 연휴에는 벽돌책이 아니라도 책 한 권쯤은 읽고 지나가야 할 일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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