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흥찐빵’ ‘지평막걸리’ 상표 등록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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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산지를 상표로 인정해 버리면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른 상품들과 식별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상표법은 산지 등을 그대로 상표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열린 ‘안흥찐빵 축제’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찐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횡성군청 제공

몇 년 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열린 ‘안흥찐빵 축제’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찐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횡성군청 제공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쪽으로 가다 보면, 횡성 근처에서 ‘찐빵의 고장 안흥면’이라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원래 찐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은 면’이었다. 이 이정표는 언제 생긴 것일까?

먹을거리에서 자주 문제되는 산지 상표

1970년대부터 안흥면에서 호떡을 팔던 한 상인이 있었다. 1985년께부터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근처 휴양지로 가는 관광객들이 주고객이었다. 이 찐빵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90년대 후반 신문, 방송에도 났고 이 찐빵을 먹으러 일부러 안흥을 찾아 오는 관광객들도 생겨났다. 이 상인이 운영하던 가게는 원래 호떡집이었는데 이름을 ‘안흥찐빵’으로 바꿨고, 안흥에는 찐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10여개 이상 생겼다. 급기야 면사무소에서도 ‘찐빵의 고장 안흥면’이라는 이정표를 세우고 홍보를 시작했다. 이때 안흥찐빵을 처음 시작한 상인은 ‘안흥찐빵’이라는 상표를 등록하여 보호받을 수 있을까?

경기도 양평에는 ‘지평’이라는 작은 ‘면’이 있다. 지평면에는 1920년대부터 거의 1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온 양조장이 있는데, 이 양조장은 막걸리를 빚어 ‘지평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다. ‘지평 막걸리’는 상표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상표란 상품의 출처를 알리기 위한 표현 수단이다. 따라서 상표에는 수요자들이 그 상품의 출처를 구별할 수 있는 식별력이 있어야 한다. 식별력이 없는 것은 상표로 사용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상품의 산지, 품질, 원재료, 효능, 용도, 수량, 형상, 가격, 생산방법, 가공방법, 사용방법 또는 시기를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는 등록을 받을 수 없다.

만약 산지를 상표로 인정하여 특정인에게 독점 배타적 권리를 인정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원산지는 그 상품이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므로 통상 상품의 유통과정에서 필요한 표시다. 만약 산지를 표시한 것을 상표로 인정한다면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이라는 것을 표시하더라도 상표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공익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상표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품과 구별되는 식별력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품의 산지를 상표로 인정해 버리면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른 상품들과 식별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상표법은 산지 등을 그대로 상표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산지를 상표로 사용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주로 먹을거리에서 문제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당두부’ 사건이다.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서는 약 100년 전부터 다른 지역과 달리 동해의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서 두부를 만들어 왔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초당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이 두부를 제조했고, 그 중 50여 가구는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초당마을에서 생산되는 두부가 널리 알려지게 됐다. 초당두부의 특이한 제조방법과 그 특별한 맛 덕분에 강원도 일대 또는 이를 전해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초당마을에서 생산되는 두부를 먹기 위하여 모여들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법원은 “초당두부가 초당마을에서 생산되는 두부를 의미할 뿐, 특정한 상품의 출처표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다. 상표법의 목적이 무엇인가? 상품의 출처표시 및 그 식별이다. 만약 산지의 지명을 상표로 사용하더라도 대부분의 수요자가 해당 상표를 특정 상품의 출처표시로 인식하고 있다면 상표등록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상표법은 상표등록출원 전부터 그 상표를 사용한 결과 수요자가 특정인의 상품에 관한 출처를 표시하는 것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 경우에는 그 상표를 사용한 상품에 한정해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제도로 보호

‘안흥찐빵’과 ‘지평막걸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안흥찐빵의 경우 작은 행정구역인 안흥면의 특정 지역 내에 찐빵을 만들어 파는 상점이 10여개 이상 성업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상점이 그 상호에 안흥과 찐빵이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안흥찐빵’이라는 말이 마치 안흥 지역에서 생산되는 찐빵을 가리키는 관용어처럼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초당두부’ 역시 법원이 이와 같은 취지에서 상표로 인정을 하지 않았다.

지평 막걸리는 조금 달랐다. 해당 양조장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문화재 등록이 되고, 신문이나 TV에 나오기도 했으며 나름대로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어 전국에서 판매가 되고 있었지만, 지평면에서 막걸리를 만들어 파는 사업자는 해당 업체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예로부터 마을 전체에서 막걸리를 많이 만들었던 포천 일동막걸리, 지리적 범위가 넓어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 많은 전주막걸리, 제주막걸리 등과도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는 컸다. 법원은 ‘지평’이 막걸리의 산지를 보통의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상표에 해당할 여지는 있지만, 이미 예전부터 수요자들에게 상품의 출처표시로 인식되고 있었으므로 상표등록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분쟁에서는 작은 차이를 찾아내고, 이들을 잘 꿰어 낼 수 있느냐에서 승패가 갈린다.

그럼 이후 안흥찐빵은 상표로 아예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 법에는 2005년부터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이라는 제도가 도입됐다. 상품의 품질, 명성 또는 그 밖의 특성이 본질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비롯된 경우, 그 상품이 해당 지역에서 생산, 제조, 가공된 상품임을 나타내는 표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지리적 표시는 그 상품을 생산, 제조 또는 가공하는 사람이 공동으로 설립한 법인이 직접 사용하거나 그 소속 단체원만 사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성녹차’가 1호로 등록됐고, ‘영덕 대게’, ‘이천 한우’, ‘춘천 막국수’ 등 300여건이 등록됐다. ‘안흥찐빵’도 특정인의 상표로 등록되는 건 거부됐지만, 2010년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제55호로 등록돼 보호를 받고 있다.

<유재규 법무법인 (유한)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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