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내뱉은 말, 허용되는 범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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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멸적 표현이다. 어느 정도 수위로 말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 때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준의 비난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가 문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들끼리 상부상조하며 이웃사촌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전통이 남아있는 곳들도 많지만, 층간소음이나 공동 공간의 관리에 대한 견해 차이, 서로의 생활습관에서 오는 차이 등으로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한 아파트에 살았던 A씨도 이런 일을 겪었다.

A씨는 아파트 뒤편 화단에 물을 주는 문제로 같은 아파트 주민과 폭행죄, 무고죄로 고소를 하는 등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 주민은 나이가 A씨보다 20살 이상 적었는데, 어느 날 A씨에게 반말을 잇달아 하더니, 아파트 경비원이 멀리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A씨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A씨는 이런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어이 없어 영어로 “you are fucking crazy”라고 말했다. A씨와 갈등을 겪던 주민은 모욕을 당했다며 A씨를 모욕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모욕죄의 성립은 인정하면서도 A씨가 이와 같이 말한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소하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그러자 A씨는 헌법재판소에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으로 인하여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당했다며 이를 취소해줄 것을 요청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법률 프리즘]무심코 내뱉은 말, 허용되는 범위는

인터넷의 악성 댓글 등 분쟁 늘어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지난 5월 25일 “A씨가 한 말의 뜻은 ‘당신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당신 정말 말도 안 된다’ 정도로 보인다”며 “고소인을 모욕할 의사가 있었다거나 고소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fucking’은 ‘crazy’를 강조하는 수식어로 ‘대단히’, ‘지독히’, ‘매우’ 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crazy’는 ‘미친’, ‘정상이 아닌’, ‘말도 안 되는’, ‘열광하는’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 위 표현이 경멸적 표현인지 여부는 사전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위 표현을 하게 된 경위 및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검찰에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이와 같은 모욕과 관련된 분쟁이 점점 늘고 있다. 법무부의 자료를 보면 모욕죄 고소사건이 2004년에는 2225건이었는데, 2015년에는 3만6931건으로 16.6배 늘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명예훼손 사건 역시 2004년 1257건에서 2015년 9372건으로 약 7.4배 늘었다. 현실세계에서는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 게시판 등을 통해 논쟁을 벌이다 험한 말을 주고 받으며 모욕 또는 명예훼손 분쟁으로 가는 경우, 악성댓글 문제 등 다양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는 어쩌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 표명과 감정 표현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줄어 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척도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는 모욕죄가 어떤 때 성립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형법 제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모욕적 표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모욕죄에서 ‘모욕’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 또는 감정을 표현하여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을 말한다. 욕설을 한다거나 욕설에 가까운 경멸적 표현을 할 경우, 지독한 악성댓글을 계속 달아서 일상생활이나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에 이를 경우 대부분 모욕죄에 해당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욕설이 아닌 경멸적 표현이다. 어느 정도 수위로 말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 때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준의 비난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가 문제다. 이에 대한 일반적 기준을 세우기는 매우 어렵다. 법원은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판단한 뒤,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무죄를 선고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헌재 “모욕죄는 헌법에 부합” 두 번 판결

법원이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는 ‘보험사기 했잖아, 사기꾼’, ‘그렇게 소중한 자식을 범법행위하는 데 변명의 방패로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패륜을 즐기는 정신나간 여자’라는 표현이 있다. 이 정도 표현이면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나쁘게 만드는 수준의 비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그런 식이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라는 표현에 대하여는 그 내용이 너무나 막연하다는 이유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그렇게 소중한 자식을 범법행위하는 데 변명의 방패로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라는 표현에 대하여는 자신의 판단과 의견의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사용한 표현이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모욕에 대한 규제를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 것인지, 형사처벌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하여는 많은 논란이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나 모욕죄가 우리 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다투어졌다. 두 차례 모두 헌법에 부합한다는 결론은 같았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고, 법 집행기관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염려도 없으므로 모욕죄가 유지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다만 2011년에는 전원일치로 헌법에 부합한다고 인정되었으나, 2013년에는 위헌이라는 의견도 3명이나 되었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도덕이나 사회의 영역에서 해결 가능한 것은 도덕이나 사회 구성원에게 맡겨야 한다”며 “단순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의 표현행위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자기 교정기능에 맡기거나 민사적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남을 모욕해 스스로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먹게 하거나, 그보다 더 심하면 당사자 간 손해배상 책임으로 조절할 일이지 국가가 개입하여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나타낸 것이다.

모욕죄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한다면,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원리인 표현의 자유, 상대방을 비판할 자유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모욕적인 말을 들은 사람은 그 명예감정이 훼손됐을 수 있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그와 같은 표현이 의미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이를 그대로 두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특히 인터넷 공간은 그 전파의 속도, 범위가 상상을 초월하므로 합리적인 규제책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모욕적 표현이 형사처벌로 규제될 필요가 있는 사회일까.

<유재규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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