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어디까지 보호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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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는 새로 게임을 출시한 이후 경쟁사에서 출시한 게임의 게임 전개방식, 게임 규칙 등에 자기 회사의 아이디어가 이용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경쟁사를 상대로 법률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1997년 5월 11일이었다. IBM이 개발한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겼던 것이. 그때만 해도 체스보다 훨씬 경우의 수가 많은 바둑에서는 인간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여겼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졌고, 지난 5월 23일, 바둑 세계 랭킹 1위 커제 9단도 알파고에게 완패하고 말았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때 미 항공우주국이 사용했던 컴퓨터의 성능이 요즘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만도 못하다고 하니,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공지능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자가 언급했을 만큼 4차 산업혁명은 이미 현실이다. 정보화 혁명에서 또 한 차례 혁명적으로 진일보한 시대, 아이디어 또는 정보·지식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아이디어가 이끌어낼 수 있는 변화의 속도나 정도가 더욱 급격해지는 시대, 아이디어와 정보를 소수가 독점하던 시대에서 대중이 공유하며 혁신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의 시대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아이디어에 대한 법률적 보호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이 문제는 예전부터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것은 결국 아이디어의 가치를 극대화하여 우리의 생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보호의 정도를 자칫 잘못 설정하여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지나치게 독점적 권리를 보장해주면 원래의 보호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위험성이 있다. 반면 아이디어에 대한 보호가 지나치게 느슨하면 굳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는 유인이 줄어들 수 있고, 이 또한 우리 사회가 지향할 방향은 아닐 것이다.

중국 바둑랭킹 1위 커제 9단이 5월 25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두 번째 대국 중 머리를 감싸며 고민하고 있다. / 우전 | 신화연합뉴스

중국 바둑랭킹 1위 커제 9단이 5월 25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두 번째 대국 중 머리를 감싸며 고민하고 있다. / 우전 | 신화연합뉴스

구별하기 어려워진 아이디어와 표현

이러한 전통적 딜레마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우리 법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아이디어를 특허법으로 보호하면서, 대신 그 아이디어를 대중에게 공개하여 경쟁자들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도록 경쟁을 촉진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한편 소설이나 사진, 영화, 드라마, 게임 등 저작권의 보호대상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아이디어를 보호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표현’에 한하여 보호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법이 사회의 변화 속도를 실시간으로 쫓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표현기법이 다양해지면서 어디까지가 아이디어이고, 어디부터가 표현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렇다보니 새로운 분야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낸 성과를 법률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아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보자. 성형외과 의사가 웹사이트에 모발이식 수술 전후의 사진을 올렸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환자와 상담을 했다. 그런데 다른 의사가 이 상담 사례를 자신의 온라인 상담 게시판에 그대로 사용하고, TV에 출연하여 사진도 자기가 치료한 사진인 것처럼 사용하면 법률적 문제가 생길까?

게임사는 새로 게임을 출시한 이후 경쟁사에서 출시한 게임의 게임 전개방식, 게임 규칙 등에 자기 회사의 아이디어가 이용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경쟁사를 상대로 법률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이들은 전통적으로 저작권으로 보호를 받지 않는 영역이었다. 수술 전후의 사진은 치료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찍은 사진으로 창작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환자와의 상담내용을 글로 적었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글은 의사라면 대부분 비슷하게 쓸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창작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임규칙이나 전개방식 역시 저작권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아이디어의 영역에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위 두 사례에서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사진과 상담글을 도용당한 의사는 권리를 인정받았지만, 게임사는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예능프로의 포맷도 저작권인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모방의 한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판단의 차이였다. 일반적으로 웹사이트에 공개된 정보는 저작권으로 독점적 보호를 받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의사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사용하여 나름의 수술방법, 상담내용을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것은 병원 운영의 일환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는 행동이므로 보호받을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고 무단도용하여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한도를 넘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반면 게임의 경우 그 산업적 특징을 고려할 때 조금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게임의 장르라는 것은 결국 같은 규칙을 가진 게임들을 묶은 것이므로, 같은 장르의 게임들은 그 규칙이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모바일 게임의 경우 스마트폰이라는 제한된 매체에서 표현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게임규칙은 특정인에게 독점권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그 바탕 위에서 다양한 표현이 나오도록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게임 이용자들에게 보다 재미있는 게임을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지난 2014년 1월 이와 같은 문제를 규율하기 위한 법 조문이 하나 신설되어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 현상을 포괄적으로 규율해야 하다 보니 그 적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하지 않은 면이 있다. 덕분에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종류의 사건이 다양하게 늘어나고 있다. 기존 저작권법에서는 보호대상으로 보지 않던 TV 예능프로그램의 포맷을 법률로 보호할 것인지,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 정보가 법률상 보호할 성과물에 해당하는 것인지, 내부디자인·장식·표지판 등에 나타나는 영업의 전체적 이미지를 법률로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 등이다. 하급심 판결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대법원의 명시적 판단이 나온 경우는 아직 없다.

법학에 처음 입문했을 때, 선배로부터 법이란 결국 구별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기존 법률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아이디어와 정보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보호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를 위해 새로운 법률이 정비되었다. 이 법률을 토대로 대법원은 어떠한 기준을 정립할 것인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본다.

<유재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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