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보여주는 리얼리티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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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 안에서는 두 건의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순서대로 나열해보겠습니다.

# 배우 이준기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 <내 귀에 캔디 시즌2>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왕년에 많은 사람들이 해봤던 ‘폰팅’을 모티프로 서로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 두 사람이 전화 통화를 통해 교감하고 속내를 드러내며 서로 치유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준기는 배우 박민영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들의 일상적인 표현은 점점 사랑의 밀어(蜜語)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시청자들도 설레었죠. 하지만 이준기의 진짜 여자친구는 배우 전혜빈으로 밝혀졌습니다.

#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가 방송에서 2000만원 복권에 당첨됐습니다. 혜리는 케이블채널 엠넷의 토크쇼 <신 양남자쇼>에 출연했다가 선물로 즉석복권을 받았습니다. 이를 바로 긁었는데 2000만원에 당첨이 된 겁니다. 방송은 사실 유무를 알려주지 않고 당일 분량을 끝냈고, 이 소동은 소속사의 확인으로 기정사실화됐습니다. 하지만 복권당첨 소동은 결국 제작진이 치밀하게 계획한 ‘몰래카메라’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토크쇼 「신 양남자쇼」 / Mnet

토크쇼 「신 양남자쇼」 / Mnet

예능 프로그램 「내 귀에 캔디 시즌2」 / tvN

예능 프로그램 「내 귀에 캔디 시즌2」 / tvN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속도로 방송가 예능의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진짜의 재미를 추구하는 시청자의 기호에 따라 리얼리티 예능은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연예인들이 만나 가상 부부가 돼 진짜 같은 감정을 키우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결과를 놓고 도전에 나서면서 과정의 좌충우돌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리얼리티가 예능 안에서 보편화되고 고도화되면서 이에 따르는 부작용도 시작됐습니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연인들을 응원하다가 이들의 진짜 사랑을 알면 배신감을 느끼는 것처럼 리얼리티에 출연한 이들에게도 비슷한 사고작용을 하는 겁니다. 이준기의 경우에는 제작진의 다양한 편집과 후광효과를 통해 박민영과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는 듯한 착시효과를 줬습니다. 하지만 이준기는 전혜빈과의 열애설에 휘말렸고 결국 뒤늦게 인정을 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습니다.

현실의 사랑에 극중 분위기가 다 깨진 시청자들에게 <내 귀에 캔디 시즌2>의 밀어는 더 이상 달콤할 수 없었죠. 결국 제작진은 특별판 방송을 취소합니다. 교제 중인 배우가 사전 언급 없이 이러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혜리의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바로 방송이 끝날 때까지 복권 당첨의 진위 여부를 알려주지 않은 것 때문이었죠. 시청자들은 진짜 선물을 개봉하는 리얼리티 작법에 익숙해져 가짜 복권임을 숨겼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겁니다. 게다가 몇 개 매체의 보도로 복권 당첨은 사실이 됐고 뒤늦게 제작진이 사과했지만 시청자들의 원성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리얼리티가 인기있는 이유는 ‘진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능 안에서의 리얼리티는 재미를 위해 ‘진짜인 것처럼 보여준다’는 허구성을 깔고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방식은 마치 그 내용이 진짜인 것처럼 시청자를 오해하게 하죠. 시청자를 리얼리티로 유혹하는 것은 방송사 영업방법의 하나일 수 있겠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갖고 현혹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깨어난 시청자들의 분노는 다른 장르보다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TV가 시청자를 화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경헌 스포츠경향 엔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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