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한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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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삼성동 자택에 도착해 지지자들을 향해 웃으며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삼성동 자택에 도착해 지지자들을 향해 웃으며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럴싸하지만 논리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궤변이라고 한다. 궤변에도 종류와 수준이란 게 있다. 적어도 뭔가를 알고 하는 궤변은 주로 진실을 감추거나 왜곡하기 위해 사용된다. 실제로 ‘그럴싸한’ 논리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 경우 궤변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화는 나지만 궤변자 입장에 서보면 한편으로 이해는 된다.

문제는 아무것도 몰라서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다. 무식해서 모를 수도 있고, 정보를 받지 못해서 모를 수도 있고, 관심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궤변을 듣고 있자면 그냥 화가 치민다. ‘유체이탈 화법’, ‘공주 화법’ 등으로 회자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최성호 경희대 철학과 교수는 3월 7일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7시간 만에 중대본을 찾은 박 전 대통령의 그 유명한 ‘구명조끼 질문’에 대해 언어철학적으로 분석했다.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박 전 대통령의 질문이다. 분명 궤변이다. 이미 그 시간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바닷속 선체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청와대는 이 발언이 나중에 ‘세월호 7시간 행적 논란’의 근원이 되자 “구조에 박차를 가하라는 뜻”이라고 둘러댔지만 최 교수의 분석은 달랐다. 최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한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음을 지적하면서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7시간의 업무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제대로 된 상황보고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TV 뉴스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몰라서 한 궤변’의 전형인 셈이다.

그 이후로도 숱한 궤변이 있었지만 백미는 역시 지난 22일 검찰 조사를 마친 직후 나온 말이다. 변호인단은 “검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뜻이라고 했다. 경의. 말 그대로 ‘존경의 뜻’이다. 불과 몇 달 전 “믿을 수 없다”며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비난할 때는 언제고, 거기에 특검 수사 결과까지 더해 13개의 혐의를 추궁한 특수본에 “존경한다”고 말했다.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그간 “탄핵 맞아요?(3월 10일 탄핵 선고 직후)”, “진실은 밝혀질 것(3월 12일 자택 복귀 직후)” 등 박 전 대통령의 언행을 봤을 때 이 역시 현 상황을 ‘몰라서’ 한 궤변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 수사를 받아보니 본인이 무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쯤되면 궤변도 ‘폭력’이다. 듣고 있자면 국민들은 화가 나고, 지치고, 힘들다. 대체 언제까지 저 궤변을 들어야 하나.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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