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유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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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에서 경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지사직을 사퇴하고 선거캠프에 합류하기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 지사의 측근인 김종민 의원은 13일 t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실이 아니다. 개인적 바람이나 전망 차원에서 오고간 얘기가 확대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해 사실관계에 선을 그었지만, 캠프의 위기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안 지사의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예견된 일이다. 안 지사는 민주당 지지층이 아닌 유권자들에게서 선호도가 높았다. 안 지사가 주장한 ‘협치’, ‘대연정’은 통합과 안정적 개혁을 요구하는 보수층의 목소리로 해석되지만, 민주당 후보로서 집권하더라도 여소야대 국면에서 피할 수 없는 난관을 통과할 방안을 제시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논쟁과정에서 문 후보 측은 안 지사의 지지율은 ‘역선택’이라고 폄하했고, 대연정은 현실성을 묻기보다 ‘적폐세력과의 연대’로 몰아붙였으며, 안 지사 편에 섰던 박영선 의원에게 지지자들이 문자폭탄과 18원 후원금을 쏟아낼 때 묵인했다. 완전국민경선의 특성상 경선의 후폭풍은 지지자들도 강렬하게 겪는다. 일련의 과정이 남긴 상처는 민주당 경선 후보들의 맥주 회동 사진을 언론에 내보내는 것으로 치유될 수준이 아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왼쪽부터)가 2016년 11월 3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 일정을 논의하기에 앞서 마이크를 정리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왼쪽부터)가 2016년 11월 3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 일정을 논의하기에 앞서 마이크를 정리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문 후보 측은 “안철수 후보는 적폐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안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 정치·언론 엘리트를 지칭한다고 주장하지만,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일반 유권자들을 싸잡아 적폐세력이라고 지칭한다는 오해를 비켜가기 쉽지 않다. 문 후보가 안 지사의 지지층을 흡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었다. 지난해 초 민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된 필리버스터와 4·13 총선에서의 여소야대 정국 형성, 최순실 게이트 폭로와 촛불집회의 과정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역에서 집회를 조직하던 실무자들 상당수는 정의당 및 노동당 활동가들이었고, 국민의당이 탄핵연대를 결성하지 않았다면 바른정당 의원들도 뛰쳐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념과 성향이 제각기 다른 80%의 탄핵 찬성 여론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8대 0 판결을 이끌어냈다. 연쇄의 한 고리라도 빠지면 탄핵은 불가능했다.

문 후보 캠프는 이를 간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문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지만 표를 줄 수도 있는 유권자들을 떠나게 하고, 시민 간에 상처를 남긴다. 상처를 밟고 지지층을 결집해 집권하더라도 여소야대 정국이 기다린다. 그때의 통합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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