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국가경제 혼란 부르는 위폐 ‘슈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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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만으로 흥미를 끄는 영화들이 있다. 남과 북의 형사가 공조수사를 벌인다? 김성훈 감독의 영화 <공조>의 상상력은 꽤 발칙하다. 그리고 엉뚱하다. ‘말도 안 되고 이상한데 묘하게 웃긴다’는 리뷰평, 딱 그대로다.

줄거리는 이렇다. 북한은 비밀리에 만든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동판을 탈취당한다. 걸프전에도 파견됐던 특수부대 요원 차기성이 훔쳤다. 동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 북한은 궁지에 몰린다. 차기성은 서울로 잠입해 동판 거래에 나선다. 북측은 남측에 장관급 회담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극비리에 첫 남북 공조수사를 제의한다. 북한이 파견한 형사는 ‘림철령’(현빈 분)이다. 차기성의 총탄에 아내와 동료를 잃은 림철령은 차기성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있다. 림철령의 남측 파트너는 연봉 3400만원짜리 생계형 형사인 강진태(유해진 분)다.

[영화 속 경제]「공조」-국가경제 혼란 부르는 위폐 ‘슈퍼노트’

림철령에게 주어진 실제 비밀임무는 슈퍼노트(super note) 동판 회수다. 슈퍼노트(혹은 슈퍼달러)란 진짜돈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화 100달러권 위조지폐를 말한다. 슈퍼노트는 전문가들은 물론 위조지폐 감별기도 잘 식별해낼 수 없을 정도다. 100달러짜리 용지는 특수기술을 써서 만드는데, 슈퍼노트는 똑같은 용지를 쓴다. 적외선을 비춰야만 드러나는 숨은 그림까지 완벽하게 구현했다. 달러 제조에 사용된 특수잉크는 허락된 제작사만 사용 가능하다.

이런 난관을 다 극복하고 슈퍼노트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인적 범죄가 아닌 국가 차원의 범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은 그 출처로 북한을 의심하고 있다. 2006년 북한 외교관들이 여행용 가방에 슈퍼노트를 다발로 넣고 다니다가 적발됐다. 또 탈북자들이 북한 내 달러 위폐제작소가 존재한다고 폭로했다. 미국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즐겨 마신 프랑스산 코냑부터 핵실험 및 로켓 관련 설비까지 이 돈으로 구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설도 있다. 중국의 전직 군부, 이란의 종교지도자들, 시리아·레바논의 헤즈볼라, 구동독 등이 의심선상에 올라 있다. 미국 CIA가 의회승인을 받지 않고 자금을 쓰기 위해 제조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위조지폐가 대량유통되면 화폐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진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나치의 베른하트 크루거 소령은 영국 상공에서 파운드 위조지폐를 뿌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베른하트 작전(Operation Bernhard)’이다. 독일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800만장, 약 1억3000만 파운드의 위폐를 만들었다. 영국 국고의 4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폭격기로 하늘에서 뿌린다는 작전은 실패했지만 작전용 자금 등으로 막대한 위폐가 통용됐다. 영국은 5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겪자 1944년 파운드화 신권교체를 단행했다. 당시 위조지폐 제작에 투입됐던 유태인 아돌프 브루거는 2006년 <악마의 공장: 작센하우젠 위조지폐 공작소>라는 책을 출간해 이 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비슷한 시기 조선공산당의 ‘조선정판사위폐사건’도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조선공산당은 당 자금 마련을 위해 일제가 조선은행권을 발행하던 빌딩을 접수했다. 이곳에는 지폐원판이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이곳의 이름을 ‘조선정판사’로 바꾸고 위폐를 발행하다가 이듬해 경찰에 적발됐다.

달러 위조지폐를 국가 주도로 만들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다. 과연 북한이 만들었을까. 진실은 그들만이 알고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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